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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10 19:39 수정 : 2015.02.10 19:39

[짬]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지은이 테사 모리스 스즈키

“1973년에 처음 일본에 갔다. 그때가 도쿄 팰리스호텔에서 김대중씨 납치사건이 일어난 직후였다. 그 사건은 톱뉴스였고, 그 때문에 나는 그때까지 거의 몰랐던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알고 싶어졌다. 그 이듬해 여름 2주일간 한국을 여행했다.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은 몹시 암울했지만, 나는 흥미로운 인물들을 많이 만났고 금방 한국의 문화와 풍광을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얼마 전 번역 출간된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현실문화 펴냄)의 지은이 테사 모리스 스즈키(64)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교수(태평양아시아학부)는 영어와 일본어로 진행된 전자우편 대화에서 한국과 한반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51년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지금 캔버라에서 살고 있다. “81년에 대학교수로 초빙받아 남편, 아들과 함께 이주했다. 이곳 생활이 매우 만족스러워 30년째 살고 있다.”

1973년 ‘디제이 납치’ 직후 일본 여행
‘한국’ 궁금해 이듬해 방문하면서 인연
모국 영국에서 동아시아 식민사 연구

2005년부터 4차례 북한 방문해
“북한에 조심스런 관여…기술협력” 제안
‘일본 과거 망각하면 분쟁의 씨앗’ 경고

테사 모리스 스즈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교수.
그는 지금까지 북한을 4번 방문했다고 했다. 2005년과 2007년, 2009년, 2012년. ‘금강산으로의 여정’쯤으로 읽힐 이 책(원제 ‘To the Diamond Mountains’)은 2009년 방북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일본 경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모리스 스즈키 교수는 탈근대와 탈식민지화 관점에서 민중의 기억과 경험을 담아내는 연구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모국인 영국의 식민지배 책임을 비롯한 제국주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50년대 말에 시작된 10만여명의 ‘재일동포 북송사업’이 일본 우파 지배세력의 계획적인 재일조선인 기민정책이었음을 폭로한 <북한행 엑소더스> <봉인된 디아스포라> 등을 비롯해 <변경에서 바라본 근대>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묻는다> 등의 저서들이 국내에 번역 출간돼 있다.

그는 재일동포들에 비하면 자신은 “운 좋은 디아스포라(유민)”라고 했다. “나의 세 자매들 역시 영국을 떠나 각자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고, 아들은 미국에 가 있다. 모두들 때론 이산의 고통을 체험하지만, 나는 그걸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영어 사용 국가에 가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나는 내 처지가 엄청 고통스런 곳으로 강제로 내쫓긴 다른 많은 디아스포라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대학 졸업 뒤 여행을 하고 싶었던 그는 일본에 가서 도쿄대에서 조교로 있으면서 영어회화를 가르치며 1년 반을 살았다. “처음 갔을 땐 동아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일본어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금방 동아시아 역사와 사회에 흥미를 갖게 됐다.” 75년 영국으로 돌아가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일본 공부를 시작했다. <길 위에서…>에도 썼지만 그 공부는 한반도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40년이 지나는 동안 점점 커졌다. 아직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는 한국 역사와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한반도를 갈라놓은 휴전선이 전체 동아시아 지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지난 150년간 동아시아의 큰 전쟁들이 모두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열강의 야욕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그는 불행하게도 지금 다시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균형이 100여년 전 상황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한반도의 장래가 세계 전체의 앞날을 좌우할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냉전적 분열의 마지막 유물인 한반도 분단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따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세계 냉전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형태만 다를 뿐 앞의 것과 유사한 새로운 ‘제2차 냉전’으로 빠져들어갈 것인지가 판가름날 것이다.”

모리스 스즈키 교수는 최근의 남북관계 경색에는 미국과 일본의 책임도 있다며, 아직도 국가보안법을 남북의 접촉을 막고 남쪽 내의 정치담론을 억누르기 위한 무기로 활용하는 한국 정부도 나무랐다.

그는 ‘북한 문제’를 기술협력으로 풀라고 조언했다. “북에 대한 조심스런 관여(engagement)가 중요하다. 바람직한 방안의 하나는 돈이나 식량 지원보다는 먼저 기술 지원에 초점을 맞춘 교류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삼림 벌목, 토양 황폐화, 보건위생 분야에 대한 기술협력은 북의 일반 주민들 삶을 개선하는 데 긴요하다. 금전적 지원보다는 그런 형태의 지원 프로젝트가 북 당국이나 군부가 그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전용할 것이라는 걱정도 덜어주고 장기적 협력 기반을 더 강화해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도 그런 프로젝트라면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반도 분단과 이른바 ‘북한 문제’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일본뿐만 아니라 한반도 분단의 실행자인 미국과 러시아, 한국전쟁 당시 유엔 참전국 등이 모두 분단 해소와 남북의 화해, 통일에 책임을 느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내 아버지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 관리로 일했다. 어머니 쪽 집안은 아일랜드에서 왔다. 그래서 식민주의가 피식민지인들에게 가한 충격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영국인들은 영국이 피식민지들에 가한 폭력을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정치적 문제들(영국이 핵심적 구실을 한 중동 문제를 비롯해)에 영국 식민주의가 끼친 폐해에 대해서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책임 문제는 내 관심분야이며, 그건 일본의 역사적 책임 문제에 대한 내 관심과 연결돼 있다.”

그는 가해자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식민주의와 그 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등의 노력을 더욱 배가해야 하지만, 최근 상황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계를 만든 건 과거다. 우리가 그 과거를 잊거나 무시하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없다. 과거를 더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 피해자들이 아니라 가해자들이다. 과거를 망각 속에 던져넣으려는 노력은 기억의 분열을 부르고, 그것은 미래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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