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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30 19:27 수정 : 2015.03.30 19:42

구본진 필적학자 겸 변호사.

[짬] 검사 출신 국내 첫 필적학자 구본진 변호사

21년간의 검사 생활 대부분을 강력부에서 보내고 최근 변호사로 전업하면서 <어린아이 한국인: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디엔에이>(김영사 펴냄)를 낸 국내 최고의 글씨 수집가요 필적학자인 구본진(50·사진)씨는 자신과 생각이 같다는 미국 인류학자 리처드 퓨얼 얘기부터 꺼냈다. 저서 <우리들 사이에서 활보하는 에렉투스>에서 퓨얼은 머리·얼굴·팔·다리 같은 신체 특징 등을 분석한 뒤 이렇게 썼다. “지구상에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장 네오테닉(neotenic)한데, 그중에서도 피하지방이 많은 한국인들이 가장 네오테닉하며, 그 다음이 중국인, 그리고 다른 몽골리안들 순이다.”

‘네오테닉’은 무슨 말인가? “신체·정신·감정·행동의 모든 면에서 어린아이 같은 특성이 줄지 않고 오히려 두드러지는 걸 가리키는데, 구체적으로 기쁨·사랑·낙천성·웃음·눈물·노래와 춤·경이감·호기심 등으로 표출된다. 이런 특성이 오래 유지되는 것이 더 좋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대장금> 등 드라마에서부터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르는 이른바 ‘한류’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외국인들이 재미난 한국을 떠나기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그 네오테닉한 한국인들 때문”이란다.

21년간 검찰청 강력부 조사실 근무
피의자 진술서 분석하다 ‘글씨’ 관심
취미로 미술품 수집하다 ‘글씨체’ 모아

최근 새 저서 ‘어린아이 한국인…’ 출간
“인류 역사상 가장 네오테닉한 한민족”
‘자유분방·순박·활력’ 필체로 확인

구씨는 퓨얼의 형질인류학과는 달리 글씨체 분석을 통해 그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글씨로 분석한 고대 한민족은 매우 자유분방하면서도 순박하고 꾸밈이 없었으며, 활력이 충만하고 행동이 신속하며 진취적이었다. 한민족은 어른이 되어서도 젊은 태도와 행동을 유지하는 네오테니 현상이 인류 역사상 가장 두드러진다.”

‘인류 역사상’이란 말이 걸려, 어떻게 그런 말을 쓸 수 있느냐고 했더니, 미국필적학회(AHAF)와 영국필적학자협회(BIG) 회원이기도 한 구씨는 “내가 찾을 수 있는 고대 문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판 등으로 다 찾아 비교해본 결과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고 단언했다. 고대 인류나 지금의 어린아이들 글씨체는 다 그런 식이 아니냐고 하자 “절대 그렇지 않다”며 그와 다른 분명한 특징이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동양미술사가 존 카터 코벨은 “5세기 무렵 신라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을 창조했다”고 예찬했는데 ‘이사지왕 고리자루 큰칼’도 그중 하나다. 그 보검의 손잡이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비뚤빼뚤하고 크기도 제각각인 ‘이사지왕’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신들린 무당의 춤”이라고들 하는 고신라 시대 글씨 ‘포항 중성리 신라비’, 고구려인의 기질을 보여주는 ‘광개토대왕비’ ‘모두루묘지명’ ‘평양성각석’ 등과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기 전의 백제 글씨들 또한 그렇단다. 이는 예컨대 엄정한 격식을 갖추고 꾸밈이 있는 ‘손추생등조상기’(孫秋生等造像記) 같은 중국산 글씨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구씨는 “글씨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글씨체에는 쓴 사람의 유전자(DNA) 정보가 암호화돼 있다”고 했다. “글씨 분석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 글씨는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15년 이상 글씨를 모았고 30년 가까이 고미술품을 수집했다. “어릴 때부터 우표, 화폐 수집 취미가 있었는데, 목기, 도자기, 민화, 고지도, 고미술 등 멋있고 비싸지 않은 것들을 수집하면서 공부했다. 책도 많이 읽고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열심히 다녔다. 주로 미술품을 수집하다가 점점 눈이 높아지면서 값도 점점 올라가 검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글씨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의 친필과 그 반대쪽 사람들 것도 모아 비교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어 친일파 인사들의 글씨도 모았다. 주말에 고서점 등에 가서 몇만원짜리부터 비싸야 20만~30만원짜리 마음에 드는 것들을 사면 뿌듯했다.” 2009년 펴낸 <필적은 말한다: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는 큰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6권의 책을 썼고 3권을 번역했다. 박사학위 논문인 <미술가의 저작 인격권>도 출간됐다.

구씨는 1994년 3월부터 퇴직한 지난달까지 21년 동안 조폭·살인·마약 사범을 다루는 검찰청 강력부 조사실에서 주로 근무하면서 피의자들에게 자필 진술서를 쓰게 하고 그것을 조사했다. 자신이 맡지 않은 사건 피의자들의 필적도 구해서 봤다.

“처음에는 진술서 내용을 보면서 수사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였는데, 나중에는 글씨체를 보면서 그 사람의 인성이나 숨겨진 내면을 예측하곤 했다. 흉악범의 글씨는 속도가 느리고 각이 많이 지고 마지막 부분이 흐려지고 필압이 무거우며 글자 사이의 공간이 좁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의 글씨는 주로 무질서하고 읽기 어려우며 필압은 약하고 기초선이나 기울기, 크기, 간격, 속도 등의 변화가 심하며 느리고 억지로 꾸민 듯한 형태를 가진 것이 많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글씨 간격이 매우 좁고 혼란스러우며 변화가 심한 경향이 있고, 치밀한 사람은 글씨가 매우 작고 명료하며 정돈되어 있고 타이핑된 것처럼 일정하다.”

구씨는 “글씨 분석으로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다면 개인이 모인 집단의 성향도 글씨 분석으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민족의 고대 글씨체를 분석해 그 시원과 실체, 고유한 의식, 문화 원형을 규명해 보자는 생각은 검사 초년 시절인 20여년 전부터 했다. “법률가는 민족혼의 대변자여야 한다”고 했다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사비니의 말대로 살고 싶었단다.

그는 “요즘 세계적으로 자판 대신 직접 글씨를 쓰자는 움직임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글쓰기는 사람을 바꿔놓는다고 강조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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