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4.22 18:59 수정 : 2015.04.22 23:29

[짬] 1920년대 배경 연극 ‘불량청년’ 출연 최은진 씨

말하다 울었고, 울다가 말했다. 온몸이 울음 구멍이다. 그곳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울음은 웃음이다. ‘풍각쟁이’ 최은진(55)씨는 1930년대 코믹송인 만요(漫謠)를 부르는 가수이자 연극배우다. 그는 천생 광대다. 몸속에 울음과 웃음을 꼭꼭 쟁여뒀다가 기습적으로 꺼내 남을 웃기고 울린다. 때로는 외국 영화의 우리말 더빙 같은 말투로, 때로는 혼자 여러 사람 목소리를 내는 복화술로 좌중을 휘어잡는다. 일상 대화가 곧 공연이다. 말은 상대를 콕콕 찌르되, 따뜻하게 감싼다. 소설가 천운영씨는 “그의 노래는 먼 데서 온 첫사랑의 입맞춤”이라고 했다. 화가 이은씨는 “그의 가게에 가면, 배꼽을 탁자 아래서 찾는 수고를 기꺼이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두 달 남짓 전, 최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극단 고래 대표인 이해성 연출가였다.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인 연극을 올리는데,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다룬 작품이다. 1920년대를 표현하려면 그 시절 음악이 필요했다. 최씨는 23일부터 새달 3일까지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 무대에 오르는 <불량청년>에서 가수와 악사로 출연한다.

2010년 ‘풍각쟁이 은진’ 음반 발표해
일제강점기 ‘웃픈 노래’ 만요 재현
“식민지 조선인 희로애락 고스란히”

미추홀극단 창단 때부터 배우로 활약
독립군-취업포기생 ‘불량청년’에 공감
“만요 악사로 100년 시공 넘나들죠”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오빠는 주정뱅이야 뭐/ 오빠는 모주꾼이야 뭐.”

최은진 가수 겸 연극배우. 사진 극단 고래 제공.
‘오빠는 풍각쟁이’는 원래 1938년 박향림이 불렀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남편 김해송이 만든 만요다. 전통과 근대가 마찰음을 빚던 식민지 조선에서 탄생한 만요는 일제 강점기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웃기지만 서글프고, 감상적이면서도 감각적이다. 음악적으로는 전통 민요와 재즈, 일본 엔카(演歌)가 뒤섞인 이종교배의 산물이다. 요즘 말로 ‘웃픈 노래’다.

‘오빠는 풍각쟁이’가 70여년 만에 새로 알려진 건 최씨의 리메이크 덕분이다. 그는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옆, 자신이 운영하는 문화공간 ‘아리랑’에서 일제 때 가요 ‘다방의 푸른 꿈’, ‘화류춘몽’, ‘엉터리 대학생’ 등을 부른다. 왜 옛 노래를 부를까. 미국에서는 지금도 30년대 스윙 재즈를 연주하는 그룹들이 많다. 그와 마찬가지다. 근대와 현대가 만나는 만요,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아리랑을 그는 사랑한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인천 일대가 ‘식민지 근대’의 풍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최씨는 2010년 내놓은 음반 <풍각쟁이 은진>을 들어 보였다. “모두 제가 골라 만든 컴필레이션 음반입니다. 만요와 기생 노래, 아리랑, 엔카, 블루스, 재즈를 다 아울렀어요. 없어질 뻔한 노래인데 제가 불러서 보존이 된 거죠. 유성기에서 뽑은 음원을 테이프로 옮긴 걸 제가 다시 부른 것이죠. 우쿨렐레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부를 수 있어요.” 앞서 2003년엔 <아리랑 소리꾼 최은진의 다시 찾은 아리랑>이라는 음반도 냈다.

그는 흥미로운 비화를 소개했다. “86년 연극을 할 때였어요. 친구인 고 이영훈이 작곡한 ‘광화문 블루스’를 제가 연극 주제가로 불렀는데요. 미국 갔다 오니까, 그 곡을 이문세씨한테 줬더라고요. 그게 ‘광화문 연가’예요. 연극 공연 때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음반 없느냐’고들 찾았거든요.”

최씨의 옷차림도 참 ‘예술스럽다’. 하늘색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분홍색 스카프를 목에 감았다. 선글라스에 달린 화려한 안경줄은 처음엔 귀걸이인 줄 알았다. 왜 터번을 둘렀을까. “머리에 숱이 많아, 미용실도 자주 안 가, 염색도 하기 싫어. 그래서 터번을 한 거지요. 두르는 방식도 내 멋대로 해요. ‘나는 자유인이다’ 뭐 이런 거죠.” 스카프는 자세히 보면 티셔츠다. 어느 작가가 프랑스에서 사온 걸 뺏었는지 얻었는지 했단다. 티셔츠를 스카프로 만드는 게 바로 예술 아닌가. 몸에 두른 패션은 화려했지만 제각각 1만원을 넘지 않는다.

최씨는 81년 연극을 시작했다. 인천 미추홀극단 창단 멤버로 들어갔지만, 신학 공부를 하겠다며 중도에 그만뒀다. 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이윤택의 연극 <산씻김>, <오구>와 <밀레니엄 베이비>, <바리공주> 등에 출연했다.

연극 ‘불량청년’은 항일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다. 취업 포기자인 2015년의 불량청년 김상복이 시위 현장에서 물대포를 맞고, 20년대로 시간이동을 해 독립운동가들을 만난다는 내용이다. 김상복은 경성·만주·상하이를 넘나들며 김상옥 열사와 김원봉의 의열단을 만난다. 시대적 배경이 최씨가 부르는 만요와 겹친다. 배우이기도 한 그와 악사를 통해 100년의 시간적 경계를 허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최씨는 “연습할 때마다 세번씩 울었어요”라고 했다. “전 감정이입이 잘 돼요. 가사를 듣고 울고, 노래를 부르다 울었어요. 이육사의 ‘광야’에 김태규 음악감독이 붙인 곡을 들으면서, 이해성 연출의 치열한 작가의식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어요.” 그는 작품의 의미도 세심하게 짚었다. “학벌과 스펙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노래를 부르자는 게, 참 자아로 돌아가자는 게 이 연극의 주제라고 봐요. 지금의 연극인들도 옛날 독립군처럼 시대의 정신을 지키는 투사들이 아닌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인들은 시대의 독립군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극단 고래 제공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