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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16 19:06 수정 : 2015.06.16 21:54

[짬] ‘성노예 문제’ 다큐사진가 안세홍 씨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대부분 한국과 일본 사이 문제라고만 생각하죠. 결코 아니에요. 이 사진들을 보면….”

20년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사진을 찍어온 다큐사진가 안세홍(44)씨의 말을 들으면서 5평도 안 되는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서울 통의동 사진공간 류가헌 2관엔 아시아 5개 나라 할머니들의 구슬픈 얼굴들이 내걸렸다. 울긋불긋한 컬러사진들 안에는 눈밑 살이 처지고 주름이 겹겹이 지고 이가 빠진 그들의 모습이 들어 있다.

1996년 ‘나눔의 집’ 취재 계기로 관심
20년째 ‘위안부 피해 할머니’ 천착
3년전 우익 협박에도 도쿄 전시 강행

중국·필리핀·인니·동티모르 등 60명
21일까지 사진·증언 곁들인 프리뷰
일 우익들 또 공세…전시기금 모금 중

다큐사진가 안세홍 씨
푸른빛 대나무집 안에서 눈을 빛내며 뒤돌아보는 동티모르의 카르민다 도우 할머니. 16살께 여동생과 함께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그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아 기억을 잃어버리고 혼자 거동할 수도 없다. 입을 앙다문 채 필리핀의 보랏빛 길거리에 선 히라리아 부스타만테 할머니는 17살에 성노예로 끌려가 매일 3~5명의 일본군을 상대했다. “위안부 제도를 운영했던 조선, 대만과 달리 다른 지역은 현지 여성들을 바로 납치해 성노예로 조달하는 등 강제성이 훨씬 심각하다”는 게 안씨의 말이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색채감이 컬러사진 속에서 빛나지만, 음울한 할머니들 표정은 한결같았다. 위안부 문제가 현재진행형임을 일러주는 사진들이랄까.

글·사진 노형석 기자

16일부터 류가헌에서 시작된 안씨의 전시는 <겹겹-지울 수 없는 흔적>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올여름과 가을, 세차례 열리는 연작 전시의 첫 시작점으로 일종의 준비행사인 프리뷰 전시회(21일까지)다. 지난해 6~9월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을 돌며 찍은 아시아 5개 지역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 60여명의 사진을 간추린 것들이다. 프리뷰전 출품작에 사진을 추가하고 할머니들의 증언을 덧붙여 8월4~16일 같은 장소에서 본전시를 열며, 뒤이어 9월4~13일 도쿄 신주쿠의 세션하우스에서 순회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안씨는 96년 <사회평론 길>의 기자로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취재한 것이 계가 되어 성노예 피해 여성의 삶을 포착하는 데 지금껏 천착해왔다. 2012년 일본 도쿄 니콘살롱에서 중국에 남은 조선 출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담은 사진전을 우익의 협박 속에서도 강행한 것이 활동상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애초 전시 계약을 파기하려는 니콘 쪽에 맞서 전시 취소 가처분 소송을 내어 승소하면서 결국 전시를 열었던 그는 이후 일본 각지 전시를 통해 위안부 실상 알리기에 발벗고 나서 활동가로서도 강한 인상을 심었다.

그는 이번 세 개의 연작 전시가 작가 이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성노예 피해 여성 문제는 아시아 전체의 현실입니다. 다른 지역 여성들도 참혹한 피해를 당했는데 현지 정부는 진상규명에도 거의 관심이 없어요. 2012년 일본 전시를 계기로 다른 아시아 지역 피해 여성들을 다수 만나면서 좀더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감정이 아닌 이성의 차원에서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강제하는 힘을 확보하자는 게 궁극적인 목표가 되겠지요.”

그는 이번 프리뷰전을 통해 2012년 이후 피해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과 함께 추진해온 ‘겹겹 프로젝트’를 알리고 동참을 이끄는 데 힘을 쏟을 생각이다. ‘겹겹’은 피해 할머니들 얼굴에 겹겹이 잡힌 주름을 뜻하지만, 각계각층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은다는 의미도 있다. “연작 전시의 비용과 할머니 돕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포털 다음의 ‘함께해’ 사이트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달 초부터 모금을 진행중인데, 잘 안되네요. 7월15일까지 982만원을 목표로 했는데 현재 200만원을 겨우 넘겼어요. 더 열심히 충실하게 알리고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밖에 없어요.”

일본 전시 소식이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일본 넷우익들의 압박도 시작됐다. 현지 전시장에 ‘위안부는 거짓이다’ ‘우익들의 전시도 함께 열어줘야 한다’는 등의 협박성 전화를 걸어오고 ‘일본을 떠나라’는 팩스도 날아온다고 한다. 그는 “수년 전부터 우익들의 공세로 숱한 곡절을 겪은 터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일본 정부나 우익들이 갖은 논리로 성노예 책임을 회피하거나 오도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됐다고만 공박하면 안 된다. 물리적 현실 앞에서 겹겹 프로젝트에 참여한 저나 시민들이 더욱더 강한 실력으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항상 다짐한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작가는 직접 만들었다는 일본 전시 홍보물을 보여줬다. “할머니들에게 새겨진 기억들이 곧 미래의 메시지”라고 쓰여 있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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