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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4 18:54 수정 : 2015.09.14 22:28

박익순 소장

[짬]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박익순 소장

“지금 출판계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도서 공급률(마진) 조정이다.” 30년 이상 출판계에 몸담아온 박익순(57)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소장의 첫마디다. 지난 3일 발표한 <2015년 상반기 출판산업 지표 분석> 보고서를 들고 11일 <한겨레>를 찾아온 그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9개월의 성과와 한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출판산업을 체계적으로 진흥하기 위해서는 시의적절한 정책을 수립해 집행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해당 산업의 실태조사와 통계작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이번 보고서가 “새 정가제 시행 이후의 출판시장 동향 분석 자료들 가운데 중장기 분석으로는 가장 빠르고 또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실제로 그의 지표 분석은 인용 통계수치들이 소수점 이하까지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새 정가제 이후 눈에 띄게 개선된 점은 무엇일까. “구간 도서(발행 1년6개월이 지난 도서)의 과도한 할인판매가 중단됐다.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엔 반값 할인, 심지어 90% 할인까지 성행했는데, 새 정가제 이후 진정됐다. 그리고 할인판매를 위해 문학도서를 규제 대상이 아닌 실용도서로 둔갑시키는 편법이 중단됐다. 신간 비중이 늘고, 신간의 책값이 올 상반기 평균 4.4% 인하된 것도 새 정가제 효과인 것 같다. 또 한가지, 도서관들이 지역 서점에서 도서를 구입하는 사례가 늘어나 영세 동네서점의 숨구멍을 틔워주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출판시장동향 정확한 지표 ‘정평’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9개월 분석
“상반기 서적출판지수 사상 최악”

상장 오프라인 출판기업 모두 적자
마진율 균등하게 낮춰 책값 인하를
“온라인 역차별하는 프랑스 배울만”

그런데 그의 분석 결과를 보면, 새 정가제의 최대 수익자는 대형 온라인서점이다. 그는 통계청·대한출판문화협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공개된 출판 상장기업(8개 출판법인, 1개 온라인서점 등 모두 9개사)의 반기 보고서 등을 토대로 분석했다. 8개 출판법인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899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1% 줄었고 영업이익은 313억원으로 11.3% 감소했다. 반면 대형 온라인서점은 매출액이 늘고 영업이익은 5배 넘게 증가했다. “별도 재무제표를 보면, 온라인서점(예스24)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173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8% 늘었고, 영업이익은 93억원으로 무려 518%나 증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나? 그의 분석은 이렇다. “온라인서점에서도 새 정가제 시행 이후 도서 판매량은 줄었으나 할인폭도 줄어(정가 대비 최대 19%에서 15%로 제한) 권당 판매단가는 올라갔기 때문에 전체 매출액은 오히려 늘거나 상대적으로 적게 줄었다. 또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사올 때의 정가 대비 도서매입가격 비율(공급률)은 변화가 없어 권당 마진이 늘어났기 때문에 영업이익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컨대 전에는 서점의 공급률 마진이 10% 정도였다면, 신·구간 동일한 공급률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된 지금은 60%에 공급받아 85%에 팔아도 그 마진이 25%나 된다”고 설명했다.

새 정가제 시행 이후에도 문제는 여전히 많다. “제휴카드 청구할인 등 새 정가제의 허점을 이용한 우회적 편법 할인이 성행하고 있다. 도서관의 도서 구입비 증액 요구가 예산에 반영되지 않아 실제 도서 구입량은 오히려 줄었다. 구간에 대한 ‘정가할인’ 규제가 없어짐으로써 정가를 다시 매기는 ‘재정가’ 판매가 활성화되면 책값 인하를 견인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게 지지부진 빗나갔다.” 그는 “6월말까지 재정가 책의 평균 인하율은 48.3%인데, 그 대상 책의 누계 총수는 5921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출판사들이 이처럼 구간 재정가 작업을 꺼리는 이유는, 2개월 전 사전 통지를 해야 하고, 서점에 이미 깔려 있거나 재고로 쌓인 책까지 일일이 정가를 수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기존 정가대로 파는 것이 당장은 더 득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서적출판업 생산지수는 올 상반기 최악이었다. 서적 및 문구류 소매판매액, 서적류 온라인쇼핑 거래액 모두 줄었다. 가구당 월평균 서적(도서) 구입비도 올 2분기 1만3330원으로 지난해보다 13.1% 줄어, 사상 최초로 1만5천원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위축은 새 정가제 시행에 따른 과도기적 요인들로 증폭된 면이 있지만 일반적 추세이기도 하다.

그는 온·오프 균등하게 도서 공급률 마진폭을 낮추고, 구간 재정가 판매를 활성화해야 출판사나 서점 모두 손해보지 않고 책값을 더 내릴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박 소장은 1983년 웅진씽크빅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26년간 책을 만들었고 2009년부터는 3년 남짓 대한출판문화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2013년부터 연구소를 열어 해마다 주요 출판사와 서점의 매출 및 이익 현황 분석 보고서를 발표해 왔다. 그는 지난해 온라인서점을 오히려 역차별하는 프랑스의 도서출판지원법 개정 내용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파악해 소개한 것을 “보람 있었던 일”의 하나로 꼽는다. “2003~2007년 우리나라는 거꾸로 온라인서점에만 10% 할인 특권을 허용했다. 그 결과 온라인서점은 승승장구했으나 지역서점은 몰락했다. 이젠 대형 온라인서점이 좀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온라인서점도 매출액은 주는데 수익은 증가하는 이런 구조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독서 인구와 책 소비를 늘려 도서출판시장 전체를 키워야 다 함께 살 수 있다.”

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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