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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08 18:57 수정 : 2015.11.08 20:52

광주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 이용빈 이사장

[짬] 광주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 10돌
이용빈 이사장

육군사관학교를 그만두면서 한가지 결심을 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 군인을 꿈꿨던 그가 육사에 진학했다가 9개월 만에 자퇴한 것은 “상상했던 군대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의대에 진학해 학생운동을 하다가 군에 입대했고,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뒤에도 그의 관심은 항상 ‘사람들’이었다.

올해로 무료진료 10돌을 맞은 광주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 이용빈(51) 이사장은 8일 “국적, 인종, 종교를 뛰어넘어 아픈 사람들을 돌봐줘야 한다는 뜻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센터의 취지를 설명했다.

군 장교 부친…고1때 광주항쟁 겪어
육사 1학년 자퇴 뒤 전남대 의대 입학
“이웃집 주치의 되고파 가정의학 선택”

의사·치과의사·목사 등 ‘건강사랑’
2005년 센터 열어 2만여 건 무료 진료
지난해 ‘시민플랫폼’ 토론사회 운동

“2005년 센터 6월 문을 열었다. 광산시민센터의 소모임인 ‘건강사랑’에서 만난 의사와 치과 의사들, 선교단체 대표와 목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광산구의 하남·평동산업단지 영세공장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이용하기 좋은 일요일 오후(1~5시)에 문을 연다. 지속가능한 진료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2008년 7월 광산구 우산동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10년 동안 약 2만건의 진료를 했고, 해마다 약 1000명의 외국인 노동자, 이주여성, 외국인 유학생들을 진료하고 있다.”

센터는 지금껏 ‘자원봉사자의 헌신으로 운영한다’는 초심을 지키고 있다. 의사 11명, 한의사 10명, 치과 의사 10명, 약사 10명이 매주 일요일 오후에 교대로 나와 진료한다. 전남대·조선대 치과전문대학원 학생들과 광주보건대 치기공과 학생들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센터 운영비는 1년에 3500만원가량 든다. 회원 50여명이 다달이 5만~10만원씩 회비를 내 2000만원을 마련한다. 약품 구입비는 1년에 광주시가 1287만원, 광산구가 150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 “어제(7일) 토론회에 센터 이용 환자 한 분을 토론자로 초청했다. 그분이 ‘무료진료를 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 하지만 공간이 좁아 너무 혼잡하고, 환자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지적하시더라. 그들이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특별교부금 2억원을 광산구에 지원해 우산동에 짓고 있는 도시형 보건지소 3층에 센터 이전을 추진중이다. 1억5천만원의 예산이 부족한 상태여서 내년 후반기에나 ‘독립 공간’으로 가능할 것 같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이 상근 인력 1명을 두는 것이다.”

학생 때 군인이 되려고 했던 이유를 물었다. “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 이사도 여러 번 다녔다. 광주 금호고 1학년 때인 80년 5·18 민중항쟁을 목도했다. 이순신 장군과 나폴레옹을 존경했다. 고1 때 <초적>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동학을 알게 됐고, <동경대전>을 찾아보기도 했다. 육사 1학년 때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85년 전남대 의대에 입학한 뒤, 산업보건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해 가투(거리시위)를 나갔다. 87년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으려고, 본과 1학년 진급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6월항쟁 때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으며 투쟁했다. 정부청사 진입 농성조를 꾸렸는데, 시행 직전 취소됐다. 89년 (감옥 대신) 일반병으로 군대에 갔다. 25살 때였다. 육사 동기들이 대위 하고 있을 때였다.”

가정의학을 전공한 특별한 이유도 궁금했다. “군 복무 시절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이 몰락했다. ‘제3의 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개인의 인생에 대해서도 바른길을 찾아야 할 때라고 봤다. (동네 사람들의) 주치의 노릇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해 가정의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군대에선 한의학 서적을 많이 봤다. 본과 가면 의학공부 오랫동안 해야 하지 않나. 동양의학 이론으론 건강을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했고…. 제대하고 27살 때 본과 1학년으로 입학해 졸업하고 인턴·레지던트를 거쳐 2001년 광산구 월곡동에 가정의학의원을 열었다. 이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 등이 많이 산다. 평일엔 건강보험증이 없는 불법체류자도 건강보험에 가입한 내국인과 동일한 정도의 액수(2000원)만 부담하도록 하고 진료해준다.”

대표를 맡고 있는 시민플랫폼 나들은 어떤 단체일까.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형태로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위스에선 국회의원, 시의원이 발의해 정책이 만들어져도 3개월마다 찬반투표를 해 최종 결정한다. 직접민주주의적 요소가 꽃피우려면 시민들이 깊이있는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들 시민플랫폼은 광주형 토론문화를 위한 것이다. 지난해 10월에 창립했다. 나들은 ‘나’가 모여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광주형 희망제작소 같은 구실을 하려고 한다. 회원들과 광주를 바꾸는 101가지 상상을 모으고 있다. 다섯명, 열명 모여 각자 토론해 지금까지 87가지 시민의제를 모았고, 새달 발표할 생각이다. 직접민주주의를 광주에, 사회에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많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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