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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 작가 유영호. 사진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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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그리팅맨’ 설치미술 작가 유영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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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 높이 ‘알몸의 거인’ 고개 숙여
“임진강 맞은편 북쪽에도 세우고파” 독일 유학중 2000년 프로젝트 구상
2012년 우루과이 수도에 첫 설치
“분쟁있는 20곳에 화해 심을 계획” 임진강 군남댐과 태풍전망대 사이 접경지역에 자리한 옥녀봉은 해발 207m의 야트막한 봉우리지만 주변에 막힘이 없이 툭 트인데다 임진강 줄기를 조망할 수 있어 삼국시대 초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요충지다. 유씨는 애초 북쪽 산봉우리에도 같은 크기의 그리팅맨을 세워 남북이 서로 마주 보며 인사하도록 작품을 구상했지만 남북관계 경색 때문에 북쪽 설치 작업은 숙제로 남겨뒀다. 하필 인적이 드문 외딴곳에 작품을 세운 이유가 궁금했다.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보다는 오래도록 작품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곳이 더 중요합니다. 옥녀봉을 보고 첫눈에 반했죠. 작가라면 누구라도 작품을 세우고 싶을 장소입니다.” ‘인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팅맨은 그가 지구촌 분쟁지역에 소통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추진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앞서 우루과이 등 국내외 4곳에 6m 크기로 설치됐다. 알루미늄 주물 4.5t을 사용해 역대 최대인 10m 크기로 세워진 연천의 그리팅맨은 앞으로 세계 곳곳에 들어설 그리팅맨의 메카로 자리잡을 예정이다. 유씨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독일에서 유학하던 2000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내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가 2012년에야 지구 반대편인 남미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첫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과 가장 먼 곳에서 시작해 세계로 확산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우루과이를 택했죠. 그리팅맨 설치 당시에는 현지 반응이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광장’으로 불리고 관광 안내책자의 첫 장에 실릴 만큼 지역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이어 한국전쟁의 격전지로 분단의 고통을 겪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과 제주도 서귀포에 2, 3호를 설치했다. 지난 1월엔 태평양과 대서양, 북미와 남미를 잇는 문명의 통로 구실을 해온 파나마에 네번째 작품을 세웠다. 파나마시티는 그리팅맨 자리를 랜드마크로 가꿀 방침이고, 무상으로 작품을 기증한 그에게 감사의 뜻으로 명예시민증도 줬다. 그리팅맨의 인기 비결에 대해 유씨는 “나라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인사를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그리팅맨이 세워진 뒤 우루과이와 파나마 국민들로부터 한국인에게 인사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한국 이미지가 좋아졌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전쟁의 고통을 겪었거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그리팅맨을 계속 세워나갈 계획이다. 적어도 5년 안에 나라 밖 20곳에 세우는 것이 목표다. 우선 올 10월께 적도선이 지나는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적도기념관 앞 광장에 그리팅맨을 세울 예정이다. 키토는 남미의 유엔으로 불리는 남미국가연합(UNASUR)의 12개 나라 정상회담이 수시로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에콰도르 정부의 최종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또 유럽과 아시아 문화가 융합된 브라질의 헤시피와 남미대륙의 끝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도 건립을 추진 중이다.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배 관문 구실을 해온 지브롤터와 모로코에도 대륙간 화해의 상징으로 그리팅맨을 마주 세울 계획이다. 아시아에서는 올해 해방전쟁 50돌을 맞은 베트남과 실크로드 요충지였던 키르기스스탄이 우선 대상지다. 그는 “베트남 참전군이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올해 꼭 베트남 국민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수십년 안에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될 남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에도 세워 세계인들에게 그리팅맨이 잠겨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환경파괴 위험성을 상기시킬 계획이다. 유씨는 그리팅맨 프로젝트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 홀로 모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품을 무상으로 기증하므로 혼자서 제작·운송·설치 비용을 마련해야 하고 제안서를 들고 대사관과 현장을 찾아다니며 현지 정부의 허락도 받아내야 한다. 그는 “다행히 우루과이나 파나마 국민들이 좋아해주고 3~4년 전부터 꾸준히 제안해온 국가로부터 긍정적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지금까지는 다른 작품의 수익금으로 경비를 감당해왔지만, 앞으로 더 확대하려면 뜻있는 기업 등의 후원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천/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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