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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18 20:54 수정 : 2016.08.18 22:35

[짬] 한국민속극연구소 심우성 소장

“6천명이 넘는 한인들이 학살당한 관동(간토)대지진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된다. 늘 되살리고 마음으로라도 넋을 달래줘야 한다. 예전부터 그런 비극이 있을 때 넋전춤을 추었다. 스님이나 무당들도 넋전을 만들어 아리랑을 부르며 춤을 추었다.”

민속학자이자 ‘1인극의 선구자’인 심우성(82·사진) 한국민속극연구소 소장이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1923년 관동대지진 때 학살당한 한인들 추도식’ 행사에서 넋전춤을 춘다. 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넋전춤이란, “마음속으로 그 사람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린 종이사람”을 가리키는 ‘넋전’을 작은 깃대에 달고 아리랑 등 음악에 맞춰 추는 우리춤이다. 심 소장은 “넋전춤은 사람들의 애환을 기리는 춤”이며, 한 사람 또는 집단으로 추는 것이라고 했다.

그와 함께 이번 행사를 준비해온 ‘1923년 학살당한 재일한인 추도모임’(cafe.naver.com1923) 함인숙 공동대표는 “관동대지진 희생자 추도식을 이렇게 크게 공개적으로 치르는 건 아마도 1923년 상하이 임시정부 이후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93년 전 9월1일 지진이 일어나자 도쿄 일대에서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던지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인 자경단과 군경의 손에 조선사람 6천여명(비공식 집계 6661명)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태를 방관하거나 오히려 부추겼다. 이에 임시정부는 일본 당국에 항의하는 뜻으로 추도식을 열었다.

추도식을 알리는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지금 다시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 우파들의 배외주의적 공격이 일본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과거와 같은 참혹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 행사를 통해 그 사건의 역사적인 교훈을 오늘에 계승하고자 한다.”

‘1923년 대지진 희생자’ 공개 추도식
93년 전 상하이 임시정부 이후 처음
20일 광화문광장서 직접 ‘넋전춤’
“종이인형 오려 들고 아리랑 부르며”

85년 일본인에게 ‘학살’ 얘기 듣고
지바 관음사 ‘보화종루’ 위령탑 세워

지난 17일 서울 계동 씨알재단 사무실에는 관동대지진 한인 희생자 6661명에 맞춰 일일이 손으로 오린, 1미터는 넘어 보이는 기다란 넋전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옛날에는 절집이나 무당집 벽에 넋전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그때는 남북 전역에서 넋전춤을 추었다. 우리 겨레가 애환을 기리며 즐기던 놀이의 하나다. 지금은 그걸 아는 사람이 드물다. 비슷한 게 일본에도 중국에도 있다.”

심 소장은 지난 2천년대 초 평양에서도 넋전춤을 아는 이들을 만났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여서 운좋게 평양엘 갔는데, 여관방에 한 10여일 머물면서 조선 종이를 사다가 인형으로 오려서 큰 식당에서 들고 춤을 추었지. 난리가 났어. 한 노인이 와서 보더니 평양에도 넋전춤이 있다고 했어. 대단한 환영을 받았지.”

그는 도쿄의 푸크 인형극장에서도 넋전춤을 추었다. “첫날 출 때는 한인 몇 사람만 보러 왔어. 그런데 그 다음날에는 엄청 몰려오더라구. ‘조선적’ 동포들도 몰려왔는데, 극장이 미어터질 정도였지. 극장 주인이 나를 며칠이나 붙잡아 놓고 돈까지 줘가며 넋전춤을 추게 했어.”

국제적 명성의 푸크 인형극장 주인 가와지리 다이지는 일제시대 심 소장의 부친과 사회운동을 함께 했던 인연이 있었다. 60년 심 소장이 인형극 공부를 위해 찾아갔을 때 처음으로 관동대지진 한인학살 비극을 알려주고 자료까지 건네준 이도 바로 그였다.

그의 배려로 심 소장은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던 무렵 지바현 야치요에 있는 관음사에서도 환대를 받았다. “그 절 주변에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곳이 많았다. 관음사 세키고젠 주지 스님이 뜻밖에도 내가 머물 방과 조석 식사도 대접해 주면서 그 학살 터를 알려주었다.”

그 인연으로 심 소장은 85년 관음사에 ‘보화(普化) 종루’라는 한인 희생자 위령 종각도 세웠다. “종루에 들어갈 기와와 돌·나무에 기술자·일꾼까지 배에 싣고 일본까지 건너갔어요. 김의경씨 등 10여명의 동지들도 함께 타고 갔지. 일본에서도 가와지리와 동포 영화감독 오충공씨 등이 기꺼이 동참했어.” 비용은 113명의 국내 인사들이 댔다. 종루 완공에 맞춰 열린 추모공연 때 ‘살풀이’ 독무를 춘 이가 심 소장 제자 이애주 교수였고, 중요무형문화재 104호 ‘새남굿’의 특별공연도 열렸다.

이번 추도식 공연을 주도한 ‘넋전춤의 대가’ 양혜경씨도 심 소장이 공주민속박물관 소장을 하던 시절 20대 나이에 찾아와 배운 인연이 있다.

씨알재단 후원으로, 일제시대 강제동원 희생 한인 유골의 봉환운동도 해온 함 대표는 지난해 ‘70년 만의 귀향’ 행사 때 이번 추도식 논의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2년 전 관동대지진 추모일에 일본에 가서 아라카와 강변의 한인 희생 유적지들을 순례했다. 그때 한인 추모와 반전·평화 계몽 활동을 해온 일본인 ‘봉선화 모임’과 함께했다. 그나마 심 소장님이 관음사에 위령 종각을 세워놓은 덕에 우리 쪽 체면이 섰다.” 그만큼 희생당한 동족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희박했다는 얘기였다. 함 대표는 넋전춤은 집단무가 본령이라며, 참석자들이 모두 넋전을 나눠 들고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춤을 추는 광경을 그렸다.

심 소장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드 배치 등 시사 현안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시아 1인 연극제’ 본부 회장도 맡고 있다. 팔순 고령에도 서울 낙원동 오피스텔에서 매일 글을 쓰고 책도 내고 있는 그는 추모 공연 준비팀에게 “고맙다”고 했다. “넋전춤이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라도, 경상도에서 넋전춤이 살아나고 있다. 이번 행사 소문을 듣고 공주와 진주 등에서도 올라오기로 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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