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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7 21:44 수정 : 2016.10.17 22:02

[짬] 연출·연기 직접한 독립기획자 임인자 감독

“(아르코예술극장 등) 공공극장 사용이 어렵고, (예술경영지원센터) 인력지원사업처럼 사업 자체가 폐기됐다는 안내를 받았을 때, 처음엔 내가 부족해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라는 조직적 개입, 국가 검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분노했다. 권위에 저항하는 낮은 목소리의 예술이 연극이라 생각하는데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건 등 국민의 생명과 사상의 자유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블랙리스트에 들지 못했으면 부끄러웠을 것이다.”

<한겨레> 등의 보도와 국정감사에서 실체가 드러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대한 독립기획자 임인자(40·사진)씨의 반응이다. 그는 지난 13~16일 검열사태에 맞선 릴레이 연극공연 ‘권리장전2016검열각하’에서 <시민 엘(L)-낙인과 배제의 개인사>를 작·연출·출연했다.

15일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본 뒤, 16일 그의 얘기를 들었다.

‘시민 엘-낙인과 배제의 개인사’
검열 맞선 릴레이 공연에 동참
내부고발·형제복지원 등 경험 담아

“학문·예술 자유 탄압은 범죄죠”
‘비국민’ 낳는 부당한 권력 비판
“맞서지 않고 침묵하면 결국 공범”

임씨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의 정치검열 사태 때 ‘대학로 엑스(X)포럼’ 일원으로 저항운동에 동참했다. 2010~15년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2013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 프로젝트 예술감독, 2014년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유가족·실종자 모임 총무도 지냈다.

그가 직접 겪은 블랙리스트의 의미는 뭘까? “그건 침묵하라는 메시지였다.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함부로 여기는 정권은 민주주의의 파괴자이자 헌법을 어기는 범죄자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침묵 않겠다, 공모자가 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 ‘시민 엘(L)-낙인과 배제의 개인사’는 임씨가 직접 경험한 내부고발로 인한 수난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고통, 그리고 검열 파문을 한 꿰미로 엮었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의 ‘1인 기록 낭독극’으로 그가 직접 말하고 연기한다. ‘시민 엘’은 작가 자신이다.

그는 혼자 무대에 나와 개인사와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담담히 말하며 때로 절규한다. 여기에 70~80년대 형제복지원의 사진·동영상·피해자의 그림들을 곳곳에 배치해 다큐 효과를 더했다.

임씨는 정당한 공연료 지급을 요구하는 내부고발을 했다가 몇 년 동안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검열은 우리 생각을 삭제하고 지우는 일이다. 예술가에게 그랬던 것처럼, 검열은 역사에서 배제되고 낙인찍힌 이른바 ‘부랑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을 얘기하지 않고 검열을 얘기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을 하면서 변방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형제복지원과 마주하며 ‘변방’이란 제도 안에서 바깥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과 같은 수용자를 감금·폭행·살인한 국가폭력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한국 현대사 밑바닥에서 삭제된 ‘대감금’의 또 다른 현대사를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민주화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는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끝내 19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형제복지원을 다룬 연극은 모두 3편. 80년대 말 극단 자갈치 <복지에서 성지로>, 2013년 변방연극제에 오른 장지연 작·연출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 이수인 작·연출 <해피 투게더>다.

‘시민 엘…’이 이들 세 작품들과 구별되는 건 ‘개인~형제복지원~블랙리스트’로 이어지는 낙인과 배제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는 점이다.

“형제복지원 사진을 보면, 80년대 ‘자립으로 국민에게 보답하자’, 70년대 ‘새마을 정신으로 유신의 역군이 되자’는 구호가 보인다. 폴란드 출장 때 본 아우슈비츠 정문에 쓰인 ‘일하면 풀어준다’(Arbeit Macht Frei)는 구호와 마찬가지다. 형제복지원에 감금된 이들은 국민이 아니고, 국민에게 보답해야 하는 존재였다.”

임씨는 검열과 블랙리스트도 ‘낙인과 배제’의 측면에서는 ‘비국민’을 만드는 일이 된다고 본다. “세월호 참사 등 시민들의 추모와 진상규명 요구를 탄압하는 권력에 침묵한다면 이런 일이 무수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침묵하면 공모자가 된다.”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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