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카자흐스탄 고려인 4세 리타티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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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4세 리타티야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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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생 뽑혀 ‘한국어학당’에서 유학
2012년 알마티 한국어센터 소장으로 ‘한민족 디아스포라 포럼’ 첫 참석
“함경도·러시아·중앙아시아 뒤섞인
독특한 고려말 생겨나 소통 장벽” 하지만 고려인 가운데 우리말을 읽거나 쓸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된 뒤 조국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연락도 두절돼 후손에게 구어로만 모국어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3~4세 고려인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자신의 뿌리가 한민족이며, 전통 고려 문화라는 걸 배웠지만 언어도 문화도 제대로 아는 게 없어요. 학교에서 러시아어로만 공부를 하고 집에서도 대부분 러시아말을 쓰기 때문이죠.” 1991년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고려인도 모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강제이주 역사 등 민족 정체성과 뿌리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리씨도 13살까지 한국말을 전혀 못했으나, 90년대 초 우연히 만난 원주민으로부터 ‘고려말을 할 줄도 모르면서 고려인이라고 하냐’는 핀잔을 듣고 뒤늦게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2002년엔 국가장학생으로 뽑혀 1년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92년 한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한류문화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젊은 고려인의 관심이 커졌지만, 고려인과 한국인 사이에 언어와 문화 장벽은 여전히 너무 높다고 그는 우려한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쓰는 고려말은 강제이주 이후 함경도 사투리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말이 뒤섞여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된 까닭에 한국어 표준어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예컨대, 김치는 ‘침치’, 상추는 ‘상차’, 찐빵은 ‘삐고자’로, 절편은 ‘쳄뻬니’, 돌잔치는 ‘아샨디’로 불린다. 또 ‘안녕하십니까?’는 ‘알레하심둥’으로, ‘무엇입니까?’는 ‘무시게’, ‘괜찮다’는 ‘일없다’라고 말한다. 한국식 이름이 없어진 지는 오래고, 성씨만 남았지만 이씨가 이·리·이가이·리가이로, 서씨가 서·셔가이 등으로 제각각 다르게 쓰인다. ‘성이 뭐냐’는 질문에 ‘리’라고 답한 사람은 ‘리’씨가 됐고, ‘리가요’라고 말한 사람은 ‘리가이’라는 성을 갖게 된 것이다. 리씨는 “한국인이 고려인을 만나 ‘잘 지내냐’는 인사에 ‘일없다’고 답하자, ‘일을 구해달라는 뜻이냐’고 오해한 적도 있어요. 어머니랑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도 통역을 해줘야 할 만큼 의미가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라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민족 전통을 지키기 어려운 소련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돌잔치를 해줘야 회갑 때도 대접을 받는다’며, 돌잔치와 회갑연, 동성동본 결혼 금지 등 몇가지를 고유풍습으로 지켜왔지만 그 의미나 절차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리씨는 “고려인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쓴 책은 많으나 러시아식 사고방식을 고려하지 않는 책이 대부분이고, 고려인들은 그런 책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죠.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에 익숙하고 러시아식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 고려인들을 위해 한국어 문법에 맞는 말글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책을 펴내고 제대로 된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자녀를 한국에서 살게 하고 싶냐’는 질문에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서 살게 되더라도 자신이 한민족이라는 걸 알고 살았으면 한다. 언어와 문화를 모르면 외국인과 같다”고 말했다. 김포/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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