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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7 19:11 수정 : 2017.06.13 01:11

【짬】 ‘인권판례평석’ 집필 이끈 이인석 서울고법 판사

이인석 서울고등법원 판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1별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헌법소원 등은 헌법재판소가 6년째 심리 중인 헌재의 가장 오래된 사건이다. 앞서 대법원은 2004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헌재는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 합헌 결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지금도 병역법에 따라 징역 1년6개월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국제 인권 규범의 판단은 다르다. 한국이 1990년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자유권 규약) 제18조는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년 11월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 조항에 따라 보호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법원은 2007년 12월 자유권 규약에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명시적 규정이 없고,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 여부는 가입국 재량이라는 취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국가입 국제 규범, 국내법과 동등’
헌법 조항에도 현실은 따로 놀아
국제인권법연구회 현직 판사 58명
국제협약 포함한 판례 52건 분석
양심적 병역거부 등 규범 못 미쳐
“인권보호가 판사 본연 역할이어야”

현직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연구회)가 최근 펴낸 <인권판례평석>에서 김영식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이 판결을 분석한 뒤 “국제적·국내적 인권증진의 성과에 맞추어 조만간 새로운 판결로 대치될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 지난해 10월18일 “자유권 규약 제18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도출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비추어 시대에 뒤떨어지고 국제 인권 규약에 대한 정당한 방법론적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며 2심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헌재의 세번째 결정을 앞두고 하급심의 무죄 판결이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은 우리나라가 가입한 자유권 규약 같은 여러 국제 인권 규범을 정말 국내법과 동등하게 판단하고 있을까. <인권판례평석> 편집위원장을 맡은 이인석(48·사진·사법연수원 27기) 서울고법 판사는 1일 <한겨레>와 만나 “국제거래부 재판을 담당할 때 보니 경제 분야의 조약이나 국제 법규는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똑같이 적용됐지만 국제 인권 규범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 국제 인권 규범이 기준이 된 판례가 얼마나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회 판사들은 2012년부터 자유권 규약,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 규약), 아동권리협약,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조약,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들, 고문방지협약 등 한국이 가입한 국제 협약이 포함된 판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인권판례평석>을 낸 인권법연구회는 2011년 10월 국제인권법 분야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법원의 전문분야연구회 중 하나로 현재 480여명의 판사가 회원으로 있다. 이 고법 판사는 이 내용을 2015년 인권법연구회의 법관연수에서 발표했고, 그 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현직 판사 58명이 편집위원이나 집필진으로 모여 52건의 판결을 분석했다. 이 판결들은 다시 △생명권 △신체 △양심 △평등권 △노동 △외국인 △형사 절차 △인권침해의 구제 등 8가지 분야로 나뉜다. 그중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나 사형제처럼 여전히 국제 인권 규범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도 있고,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적용해 여성도 종중의 회원이 될 수 있다고 한 판결이나 고문방지협약에 따라 고문으로 인한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한 판결처럼 국제 규범을 직접 적용한 경우도 있다. 이 고법 판사는 “책에서 소개한 판례의 법리들이 법정에서 주장되고 판사가 그에 대해 판단하는 선순환이 계속되면 국제 인권 규범이 널리 알려져 인권이 충만한 사회가 만들어질 거라 본다”며 “이 책을 계기로 많은 인권판례가 축적되면 후속 평석도 꼭 내고 싶다”고 말했다.

소수자 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법원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판사들의 자기반성도 책 출판의 동력이 됐다. “한국의 인권운동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발전해 인권운동가만 할 수 있다거나, 분단 현실과 맞물려 이념적으로 인식돼왔다.” 법률가들이 국제 인권 규범 적용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한 이 고법 판사의 진단이다. “국회, 행정부와 달리 사법부가 다수결로 선출하지 않는 이유는 소수자 보호를 위한 것이다. 인권보호가 판사 본연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국제 인권 규범은 국내법 해석을 보충하거나 국내법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좀더 풍부한 법리 전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법원의 인권보장을 위해서라도 ‘법관의 독립’ 보장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회는 법관인사제도, 대법원장의 인사권 등 사법행정의 개선을 고민해왔는데, 최근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가 연구회를 견제하려 사법행정권을 부당하게 남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회적 다수나 강자가 판사에게 압력을 넣어 법관의 독립이 침해되면 인권보호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유엔에서도 인권 보장을 위해 외부세력과 여론, 입법과 행정 권력, 내부 상급자와 관료 체계 등 법원 안팎에서 독립된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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