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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14 19:32 수정 : 2017.06.16 00:49

【짬】 5년째 트럭카페 몰고 다니는 커피여행자 이담

커피를 내리기 위해 원두를 갈고 있는 커피여행자 이담.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사주를 보니 단거리 역마살이 있다고 해요. 원거리 역마살은 아니고요. 맞는 것 같아요. 제주에서 10년 살 때도 제주 안에서만 움직였거든요. 지금도 국외는 나가지 않고 한국 안에서만 움직이죠. 여행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죠.”
“해발 3천미터 고지인 에티오피아 하라르 지역 커피입니다. 프랑스 시인 랭보가 커피 맛에 반해 커피 무역을 하려고 갔다가 죽은 곳이지요.”

커피여행자 이담(본명 이종진·51)은 즉석에서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기자에게 내밀었다. 쓰고 신 깊은 맛이 목 안을 적셨다. 기분이 좋아졌다. 이담은 2013년부터 커피트럭 풍만이를 몰고 전국 곳곳을 다니고 있다. 최근 펴낸 책 <바람커피; 로드>는 그 기록이다. 그를 13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 근처 직업체험대안학교 하꿈학교 1층 주차장에서 만났다.

“커피 매장을 내도 1년 버티기 힘든데, 저는 5년째 하고 있으니 성공한 거죠. 커피를 했기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행도 계속할 수 있었어요.”

그는 2013년 7월 풍만이와 함께 제주에서 인천으로 가는 카페리에 탑승했다. 그때 수중엔 50만원도 있지 않았다. 2002년식 봉고 프론티어 트럭 풍만이도 빚을 내 샀다. 한잔에 5천원으로 정한 커피를 하루 10잔만 팔면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원두를 트럭 뒤칸에서 가스불로 로스팅하고 핸드드립으로 내려 팔기로 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귀한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전통의식 ‘분나 마프라트’처럼 ‘커피 만들고 내리는 과정을 순수하게 나의 노력만으로 하리라’고 맘먹었다.

애초 1년을 예정한 여행이 5년이 됐다. 여름과 겨울엔 여행을 쉰다. 이때는 2년 전 겨울 제주에 마련한 지하카페 ‘동굴커피’에 머물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풍만이가 5년 동안 뛴 거리가 10만㎞ 정도죠. 통장 잔고는 처음보다는 늘었어요.”

2013년 봉고트럭 ‘풍만이’ 몰고 출발
SNS에 동선 올리고 부르면 달려가
지역 커피모임·예술공연장 요청 늘어
5년 여행기 ‘바람커피; 로드’ 책으로

벤처사업 실패 뒤 제주 살며 커피 인연
“올해 여행 마무리…제주서 로스팅 공장”

여행 전 그는 10년 동안 제주에 콕 박혀 살았다. 제주의 매력을 알리는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얻으며 <제주 버킷리스트 67>(2012)이란 책을 냈다. 지난해 나온 <제주맛집-우리는 먹으러 제주 간다>(채지형 작가 공저)도 그시절 제주살이의 산물이다.

본격적인 커피 입문도 제주에서였다. “제주에서 프라이팬에 생두를 볶기 시작한 건 결핍 때문이었어요. 집 주변에 카페도 없고 차를 20분 타고 나가도 맛있는 커피를 먹기 힘들었어요.” 생두를 볶다 아예 카페를 차렸다. 풍만이를 사기 전 3년 동안은 제주 산천단의 커다란 곰솔나무 앞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1990년부터 10년 동안 컴퓨터 잡지 몇곳에서 기자로 일했다. 벤처 열풍을 타고 2000년 회사를 차려 실패를 본 뒤 홀로 제주로 향했다. 결혼 생활도 10년 만에 파국을 맞은 참이었다.

그의 커피여행기는 한편의 동화 같다. 여행 동선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면 지인들의 방문 요청이 쏟아진다. 집이 있는 경기도 하남시를 거점 삼아 전국을 돈다. 여행은 길게는 2주 이상 걸릴 때도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지역 활동가나 예술인들이 대개 초청자다. 커피모임 운영자나 카페 사장님들도 그를 부른다. 맛있는 커피와 좋은 사람들이 만나 환한 미소가 공간을 채운다. 행복과 즐거움의 연속이다. 이담이 말하는 “커피의 힘”이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하꿈학교 교사 하성식씨가 커피동호회 회원들을 모아 그를 초청했다. 이담은 회비 1만원을 낸 참석자 20여명에게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케냐산 싱글오리진(단일 품종) 커피 맛을 보여주면서 특성도 설명해준다. 그의 커피여행을 찍은 다큐영화(<바람커피로드>, 감독 현진식)도 제작됐다. 그래서 요즘 커피트럭은 종종 이 다큐 상영회를 열기도 한다.

이담이 커피트럭 풍만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처음엔 지인들을 찾아다녔어요. 지금은 행사가 많아요. 전시 오프닝이나 책 출판 파티, 공연을 준비하는 쪽에서 연락이 와요.” 여행 2년째엔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운영팀 초청으로 행사장에서 커피트럭을 열었다. 첫날만 200잔이 나갔다. 미처 전동밀을 준비 못해 땀을 뻘뻘 흘리며 200잔의 원두를 손으로 갈아야 했다.

“맛있는 커피를 들고 다니는 여행자는 어디서든 환영받아요. 쉽게 친구가 되지요. 처음 만나 어색하다가도 커피를 나눠 마시면 분위기가 좋아지죠.”

커피 예찬은 끝이 없다. 커피 소비량이 느는 것을 두고는 “한국 사회가 이성적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커피는 정신문명의 에너지입니다. 커피가 없으면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뭔가 열심히 하기 힘들어요. 커피만큼 맛과 향이 폭발하는 게 있을까요? 와인, 위스키나 고급 청주를 생각할 수 있지만 비싸고 먹으면 취하잖아요. 커피는 술과 같은 악마성이 없어요.”

지난 커피여행 중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괴산 음악축제 때였어요. 술 취하신 분이 커피값이 비싸다고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커피를 내려 그냥 드렸는데, 굳이 돈을 내고 가셨어요.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맛있는 커피는 그냥 알아요.”

글에선 자신이 내리는 커피 맛에 대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온다. 바둑으로 치면 몇단 고수일까? “전 이제 시작이죠. 커피 세계가 넓어요. 직화 통돌이로스팅과 핸드드립만 했거든요. 이 세계에선 달인이 되어가고 있죠. 하지만 에스프레소나 머신 커피는 잘 몰라요. 커피 하는 사람들이 쉽게 친해지는 것은 서로 배울 게 많아서 그래요.” 이런 말도 했다. “로스팅은 바람이나 습기의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냅니다. 저는 여행 중 매우 다양한 조건에서 계속 볶고 있으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죠.”

커피여행은 올해로 마무리한다고 했다. 다시 제주로 내려가 로스팅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이곳 원두는 이담 커피에 빠진 사람들에게 택배로 배달된다. “심야식당과 비슷하게 커피를 주제로 한 드라마도 만들고 싶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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