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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서울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 ‘콜밴’이 복직투쟁 10돌 기념음반 쇼케이스를 앞두고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방종운 지회장, 콜밴의 김경봉·이인근·임재춘씨.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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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단식·분신·다큐·책 등으로 투쟁
“기타 만든 솜씨니 연주도 잘할 것”
김경봉·이인근·임재춘 ‘콜밴’ 결성 2012년말 첫 공연…5년새 자작곡도
“투쟁 10돌 기념음반 내고 단독공연” 1973년 성수동에서 자본금 2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기타 제조사 콜트악기와 콜텍은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차지하는 큰 회사로 성장했다. 이런 성장에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일하다 창문 밖을 쳐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아예 창문을 없애버린 비인도적 환경에서 무급으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덕분에 재계 순위 120위의 부자가 된 박영호 사장은 더 싼 임금으로 기타를 생산하겠다고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차리고 일방적으로 한국 공장을 폐업시켰다. 그동안 정리해고와 직장폐쇄에 맞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두 번의 고공 단식농성, 분신, 연대한 시민과 함께한 무기한 릴레이 단식농성, 해외원정 투쟁,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책 출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했지만 콜트콜텍 본사와 박 사장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콜밴’도 다양한 투쟁 방식의 하나로 탄생했다. 2011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성균 감독의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 상영회에서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축하공연이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킹스턴 루디스카의 매니저 한국진씨가 노동자들에게 “5년 동안 뭘 한 거냐. 악기라도 배워서 음악으로 상황을 전했으면 시민들에게 다가가기가 좀 더 수월하지 않았겠느냐”는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일반 집회에 거리감을 좀 두잖아요. 문화제 형식을 빌려서 우리의 상황을 알리면 더 낫겠다 싶어서 ‘한번 해보자’가 된 거죠.” 첫 공연은 2012년 12월 서울 마포구 홍대 근처에 있는 클럽 ‘빵’에서 했다. “군대 처음 갔을 때 신병의 자세로 이건 절대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첫 공연을 마쳤다. “땀은 줄줄 흐르고 앞엔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들은 이제 자작곡을 4곡 가진 밴드가 되었다. 4개의 자작곡엔 10년 동안 싸워온 투쟁의 역사가 모두 담겨 있다. 첫 곡 ‘서초동 점집’에는 “열네명의 검은 망토 점쟁이”란 가사가 등장한다. ‘장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시행한 것이 정당하다며 회사 손을 들어준 2014년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주문’은 김경봉이 집회 때마다 했던 말을 손봐 만든 노래다. “(박 사장이) 노동자의 삶보다 수백 수천 배의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 처절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문을 거는 노래다. ‘고공’은 기타를 치는 이인근이 2008년 고공농성 당시를 회상하며 쓴 노래다. “어둠과 밝음이 만날 즈음/ 쇠기둥 가지를 붙잡고 허공으로 올랐다”는 가사는 경험한 이만이 쓸 수 있는 가사다. ‘꿈이 있던가’는 방종운 콜트악기 지회장이 쓴 시에 노래를 입혔다. 방 지회장은 음반 마지막에 직접 쓴 시 ‘싸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를 낭송하기도 했다. “방관하고 모르는 척했던 사람 한 명을 바꾸어 가기에/ 그래서 우리는 지는 것 같아도 이겨왔던 거다”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이들은 계속 투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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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밴은 지난 9일 첫 공연을 했던 카페 빵에서 첫 음반 쇼케이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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