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22 18:09
수정 : 2018.02.01 14:32
【짬】 사설 고전학교 ‘문인헌’ 이택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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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용 문인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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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용(58)씨는 1984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 뒤 서울에서 잠시 근무하다 90년부터 경기 안산 지역에 자리를 잡고 개인 혹은 합동사무소를 열어 회계 업무를 해오고 있다.
그는 2016년 말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강남 지역에 ‘고전학교’ 문인헌을 연 것이다. 사업이라지만 돈이 벌리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회계사 수입 가운데 적잖은 몫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 대표를 19일 서울 양재역 근처 문인헌 사무실에서 만났다.
애초 문인헌을 연 곳은 강남구 삼성동 쪽이었다. 월세만 300만원이 나갔다. 지난해 지금의 서초동 오피스텔을 구입해 이사했다. “문인헌을 좀더 안정적으로 꾸리기 위해 월세 부담을 없애야 했죠.” 40평가량 되는 공간에 강의실과 세미나실이 각각 들어서 있다. 상근 직원도 한명 있다.
여기선 동·서양 고전 철학과 문학을 전문 연구자가 가르친다. 지난해 3월 첫 강좌를 열어 이달 초 5기 강좌가 시작됐다. 5기 강사진엔 진태원(스피노자)·김서영(프로이트)·민승기(데리다)씨 등이 포함됐다. 이 대표도 장자 철학을 가르친다. 수강료는 주 2시간 8주 기준으로 보통 16만원을 받는다. “강사에게 매달 최저 강의료로 60만원을 줍니다.” 지금까지 절반 이상의 강의는 수강료만으로 강사료를 맞출 수 없어 그가 사비를 보탰단다. 그는 최저 강사료 지급을 두고 “대학에 자리를 잡기 힘든 인문학자들에게 경제적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단순 수지계산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사업을 왜 시작했을까? 답이 명쾌하다. “어릴 때부터 공부가 꿈이었어요.” 그는 37살 때 연세대 야간 대학원에 들어가 ‘조선경제사’를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공부는 48살 때 시작했다.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50살인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와 가르치기를 위한 전기를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2008년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 들어가 4년 뒤 ‘선진 시대의 명론 연구(맹자와 장자를 중심으로)’로 박사 학위를 땄다. 그 뒤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논문도 20편 이상 썼고 대학 강의도 꾸준히 했다. 지금은 성균관대 학부생 대상으로 ‘중국유학사’ 한 강좌를 가르치고 있다.
재수 방황끝 생업은 공인회계사로
뒤늦게 ‘공부’ 도전해 52살에 박사
“사회와 소통하고파 동양철학 전공”
2016년 문인헌 열고 5기째 강의중
사단법인 동서고전연구회 설립
“재즈·영화 등 인문예술 플랫폼”
젊은 시절 꿈은 경제학자였다. 서울대 경제학과 진학에 두 차례 실패한 뒤 후기로 성균관대 영문학과에 들어갔다. “삼수를 하려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학력고사제로 입시제도가 바뀌었어요.” 삼수를 포기하면서 방황이 시작됐다. “대학에 적응을 못 했어요. 2년쯤 헤매다 자유직업이고 돈벌이가 괜찮다는 생각에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죠.”
왜 뒤늦게 동양철학 공부를? “나한테 도움이 되고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부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경제학은 나이 들어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 힘든 학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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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용 문인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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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사 공부 이전에도 동양 고전은 그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어릴 때 고향인 전남 영광에서 유림인 조부로부터 한문 교육을 받았어요. 조부가 <주자십회훈> 등에서 문장을 골라 가르치고 외우도록 했죠. 재수할 때도 고향에 내려가 ‘사서’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써내려가며 읽었죠.” 두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집에 서당을 열어 아들과 그 친구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가 2005년 낸 첫 책 <고전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는 이런 공부의 결과물이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할까? “인간은 공부를 안 하면 본능으로 흐르거나 사회적 관습에 쓸려갑니다. 맹자에 나오는 ‘식색성야’(食色性也)가 그런 말이죠. 고전은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이 본능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죠.”
임대료가 비싼 강남지역에 개인이 문을 연 고전학교는 매우 드물다. “강남 주민들은 자본주의 첨병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고전학교를 연 데는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 엄마들이 고전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생각은 완전 오산이었죠, 하하.”
최근 동서고전연구회란 이름으로 사단법인 설립허가도 받았다. “애초 문인헌 설립 때부터 사단법인 형태로 하려고 했는데, 허가가 뒤늦게 나왔죠.” 연구원을 두고 국가 연구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해볼 생각도 있다. “문인헌이 행복을 얻어 가는 놀이터가 됐으면 해요. 고전 외에 재즈나 영화 같은 콘텐츠가 있는 사람에게도 장소를 제공해주고 싶어요. 이곳이 인문예술 플랫폼이 되었으면 합니다.”
곧 세번째 저서 <장자 철학 무엇인가>가 나온단다. 그는 이 책에서 장자 철학의 핵심 사유라 생각하는 안명론, 즉 ‘운명을 편하게 소화해내는 법’이 어떻게 장자 철학을 하나로 꿰고 있는지 정리했다고 밝혔다.
가장 좋아하는 동양 고전은? “젊었을 때는 맹자를 좋아했어요. 맹자의 주장이 딱 떨어졌거든요. 나중에는 노자가 좋았죠. 지금은 장자로 넘어간 상태입니다. 하지만 장자 철학은 소극 철학입니다. 뭔가 바꾸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소화하는 철학이죠. 다시 논어가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녕이 다 담겨 있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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