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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일 작가가 전시장에서 자신이 1996년 4000m 상공에서 찍은 백두산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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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문화센터 3월15일까지
굴피집 한곳만 10년 찍고
산도 백두산만 20년 촬영 “광고 찍어 번 돈으로 사진 해
전시장 많이 찾았으면” 왜 백두산에 꽂혔는지 궁금했다. “처음 중국 쪽에서 백두산을 바라본 그 순간 운명처럼 ‘찍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상 한순간에 결정됐죠. 저 산 너머에 북녘땅이 있다고 생각하니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백두산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통일을 간절히 원할 겁니다. 이번 사진전도 평창올림픽의 성공과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뜻에서 사진 인화와 액자를 모두 자비로 준비했어요.” 그는 중국 지린성 장백현의 백두산 아랫마을인 이도백하에 13평짜리 살림집을 아예 마련해놓고 매년 6개월에서 10개월 이상 머무르면서 야영과 등반을 반복하며 백두산의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철마다 달라지니 살면서 찍는 수밖에 없어요.” 수시로 헬기를 타고 항공촬영을 했다. 그는 “이도백하의 집에서 보면 창밖으로 백두산이 보인다. 날마다 눈을 뜨면 오늘은 산의 어느 쪽으로 갈까 설계했다. 광고 사진을 하면서 번 돈을 20년 동안 백두산 다니면서 다 까먹었다”고 했다. 여름과 겨울이 달라 겨울에도 산에 머물면서 찍어야 했다. 가을에 미리 쌀이나 통조림 같은 것을 지고 올라가 텐트에 쌓아두고 겨울이 오면 텐트 위와 사방에 눈을 두툼하게 덮어 이글루처럼 만들었고 그곳에서 20일씩 먹고 자며 산을 찍었다. 헬기 촬영을 할 때였다. 이른 아침에 해가 떠올라 천지에 비친 순간이 왔다. “그땐 몰랐죠. 다 필름이었으니. 내려와서 현상해 보니 떡하니 찍혀 있는데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그 뒤 아무리 (촬영된 곳을) 찾으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어요.” 굴피집도 한곳, 산도 한곳만 찍은 것에 대해 안씨는 “사진 제대로 하려면 10년은 찍어야 한다.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어떻게 사진을 찍나? 굴피집도 10년 보니 겨우 좀 보이더라. 백두산은 훨씬 크고 웅대하니 20년 걸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 쪽으로 백두산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이제 우리는 만났습니다. 평창에서 만났습니다. (중략) 우리가 한 핏줄의 형제라는 걸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청년 남녀들이 한데 어울려 아무 탈 없이 잘 노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는 북녘의 동무들이 보고 싶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함께 사진전도 했고 묘향산도 같이 올라갔었던 조선인민예술가 김용남 동무는 지금도 열심히 백두산을 찍는지…. 술자리에선 언제나 ‘심장에 남는 사람’을 열창하던 딸 바보 장건철 동무네 늦둥이 딸내미는 얼마나 예쁘게 자라고 있는지. (중략) 통일을 하는 날, 그날 나는 당장 내 차에 고추장, 된장, 솥단지 싣고 개성 평양 신의주로 해서 유라시아로 떠나겠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하나가 되었다고 아주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겠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다 백두산 찍는 데 바친 셈이지만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방문해주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다”라고 당부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안승일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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