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08 22:26
수정 : 2018.03.08 22:30
[짬] 평창겨울올림픽 파견 윤기한 기상예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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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한 예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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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웨더맨으로 불렸어요. 예보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나중에는 웨더 마스터라고 불러주더군요. 국제사회에서 평창겨울올림픽에 대해 칭찬이 쏟아지는 데 기상예보도 한몫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달 2일부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기상지원단으로 파견 나가 기상예보 서비스 활동을 마치고 복귀한 기상청 윤기한(사진) 예보관은 8일 “겨울올림픽 현장에 기상예보관으로 파견 갔던 한달이 정신없이 지났지만 외국 경기 관계자들한테서 들은 몇 가지 말들이 기억의 잔상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겨울올림픽은 기상 상황에 예민한 종목이 많아 여름올림픽과 달리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반드시 기상전문가들을 포함하도록 돼 있다. 기상청은 이번에 36명의 기상전문 인력을 포함해 모두 66명의 기상지원단을 파견했다. 9일 개막하는 패럴림픽에도 기상전문 20명을 포함한 35명의 지원단이 파견됐다. 파견된 지원단은 크게 둘로 나뉘어 한 팀은 조직위 기상예보센터(WFC)에서 모여 각 경기장의 날씨를 실시간 예보한다. 다른 팀은 경기장 현장에 파견돼 경기장 코치진, 운영진을 직접 만나 기상 상황과 예보를 설명한다. 윤 예보관은 휘닉스파크 경기장에 파견됐다.
“관중을 위한 날씨 예보는 방송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알리지만 경기를 앞둔 선수들을 위한 시간별 기상예보는 회의 자리에서 직접 제공합니다. 경기마다 비공개로 각국 코치진, 국제연맹, 한국 올림픽조직위, 의료진 그리고 기상지원단이 참석하는 팀 캡틴 회의(TCM)가 열리는데, 여기서 우리를 ‘웨더맨’이라고 소개하더군요.” 일반적으로 기상예보관은 포캐스터로 불린다. 하지만 개막식 기상에 대한 정확한 예보와 이후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웨더 엑스퍼트’라고 소개말이 바뀌더니 나중에는 우리가 회의실에 들어갈 때면 ‘웨더 마스터 퍼스트’라며 길을 비켜줘 마음이 뿌듯했어요.”
평창올림픽 기간에 우려와 달리 대체로 좋은 날씨가 이어졌지만 몇 차례 눈과 강풍이 닥쳤다. 팀 캡틴 회의에서는 기상지원단이 제공한 예보를 바탕으로 경기 2~3일 전부터 일정 변경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실제로 여자 슬로프스타일 스노보드는 낮부터 강풍 예보로 예선경기가 취소되고 3회 주행 횟수를 2회로 줄였다. 또 강풍 가능성으로 크로스 경기는 평행대회전 경기와 날짜를 바꿔 진행했다. 하지만 외국 코치진 등이 처음부터 기상지원단에 신뢰를 보낸 것은 아니다.
대회 초기엔 기상정보 의구심
예보 적중률 상승에 인식 변화
포캐스터 아닌 웨더맨으로 소개
예보 근거로 경기일정 조정
사무실 방문해 기상정보 얻어가
평창 성공에 한몫 자부심 느껴
팀 캡틴 회의 말고도 경기 운영자 핵심멤버 긴급회의도 열리는데, 회의 참석자들은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여러 날씨 정보를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윤 예보관은 “지난해부터 휘닉스파크에서 여러 이벤트 경기를 총괄했던 국제스키연맹 프리스타일 코디네이터이자 겨울올림픽 모굴과 에어리얼 콘테스트 디렉터인 조지프 피츠제럴드가 우리 기상청 정보를 믿어도 된다고 말해주면서 외국 경기 관계자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스키연맹 총괄 경기 담당자, 국제올림픽위원회 관계자, 올림픽방송 담당자 등이 모인 자리에서 피츠제럴드는 “(한국 기상청 예보는) 95%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다”고 했다. 그날 모굴 경기 예선이 끝나는 밤 9시께 눈발이 날린다는 예보가 적중하자 피츠제럴드는 “역시 대단하다”고 ‘엄지척’을 해 보였다.
기상지원단이 생산하는 예보는 3~4년 전부터 경기장 일대에 자동기상관측기기를 설치해 수치 예보 프로그램에서 나온 값을 관측치와 비교해가면서 여러 가지 가중치를 개발해 새로 계산한 값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2016년과 2017년 이태에 걸친 테스트 이벤트를 통해 더욱 개선된 스마트 기상 시스템이 개발됐다. 여기서 도출된 자료를 실제 관측에 맞게 기상청 예보관들이 다시 수정해 최종 자료를 제공했다. 윤 예보관은 “실제 날씨의 변화를 고려한 정보였으니 우리의 자료가 다른 예보보다 더 정확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루는 모굴 경기 팀 캡틴 회의에서 앞에 앉아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코치 한명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내가 보는 예보가 있는데 당신들 예보의 바람 자료가 더 잘 맞는다. 어떻게 자료를 만드느냐”고 물었다. 윤 예보관은 “각국 코치진이 때때로 우리 사무실을 직접 찾아와 기상정보를 설명받고 얻어갈 때마다 기상정보센터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소치와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날씨로 파행을 겪어 평창 대회를 걱정 어린 눈으로 대했던 국제연맹과 국제올림픽위원회 관계자, 각국 감독들이 출국 전에 일부러 기상정보센터를 찾아와 ‘날씨가 좋았다. 그러나 예보가 더 정확하고 좋았다’고 해 용기를 얻고 큰 위로를 받았어요.”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사진 기상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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