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9 19:01
수정 : 2018.04.2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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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시모노비치 국제사형제반대위원회 위원이 25일 오후 서울 저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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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사형제 폐지운동’ 국제 활동가
이반 시모노비치 국제사형제반대위원
줄리언 맥마흔 호주 시민단체 대표
키아라 산지오르지오 엠네스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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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시모노비치 국제사형제반대위원회 위원이 25일 오후 서울 저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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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치러지며 평화의 봄이 찾아온 한국에 생명의 꽃을 피워야 한다는 논의가 더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사형제반대위원회(ICDP) 등은 지난 26일 오후 2시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의 국제적 현황 및 국내 이행을 위한 토론회’를 열였다.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반 시모노비치 사형제반대위원회 위원과 호주의 줄리언 맥마흔 변호사, 키이라 산지오르지오 국제사면위원회 사형폐지팀 고문은 “죽음의 문화에서 삶의 문화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도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 꾸준히 사형폐지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은 지난 1997년 12월30일 이후로 한 번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사형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도 1996년 7(존치) : 2(폐지)에서 2010년 5 : 4로 여론이 추이를 반영하듯 폐지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나 ‘어금니 아빠 사건’ 등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존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한겨레>는 지난 25일 토론회 참석자들과 만나 완전한 사형폐지가 왜 중요한지, 사형폐지 법안이 통과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들어봤다.
이들은 “사형제는 형벌의 기능보단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 법무장관을 지낸 시모노비치 위원은 “역사적으로 보면, 군부 독재 시절 한국도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무고한 시민에게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정치 보복’을 한 적이 있다”며 “한국에서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은 이런 비극적인 역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지오르지오 고문도 한국 현대사의 배경을 짚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전두환 정부 때 사형을 선고받은 바 있고,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8명은 이후 (재심에서) 무죄라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며 “사형제가 존속하는 한, 언제든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현 정부는 인권 친화적이지만 다음 정부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국가인권위·국제사형반대위 토론회
한국 현재사 짚으며 ‘정치적 악용’ 지적
“현재 인권 침해적이지만 언제 바뀔지”
정치권 결단과 여론 설득 과정 강조
“사형집행유예 선언·의정서 가입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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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맥마흔 변호사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호주대사관에서 한겨레신문과 사형제 폐지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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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마흔 변호사는 ‘완전한 사형폐지국’인 호주의 사형제 폐지 시민단체 ‘리프리브’ 대표다. 그는 사형수 ‘로널드 라이언’의 이야기를 꺼냈다. 라이언의 1967년 2월3일 호주에서 마지막으로 집행됐던 사형의 당사자였다. “당시 라이언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지 말라는 여론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여론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던 정치권에서 라이언의 사형이 집행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형이 사법정의가 아닌 정치의 도구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제도적 사형제가 폐지되는 데는 ‘정치권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앞서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들은 여론이 충분히 형성되기 전에 정치권이 앞장서 폐지를 결정했고, 이후 여론이 뒤따르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1998년 사형제를 폐지한 영국은 1964년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50여년이 지나서야 ‘폐지 찬성’ 여론이 과반이 됐고, 프랑스도 1981년 사형제 폐지 당시 반대 여론이 60퍼센트 이상으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사형제 존치의 근거로 여론을 들먹이는 것은 정치권의 비겁한 태도일 뿐입니다. 시모노비치 위원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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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라 산지오르지오 국제사면위원회 사형폐지팀 고문. 국제사면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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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오르지오 고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사형제 폐지와 집행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산지오르지오 고문은 “사형제가 존속한다고 해서 범죄율이 떨어지거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증명됐다”며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치유에 초점을 맞추는) 회복적 사법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사형제 규정이 남아있는 한국 현실에 최적화된 사형제 폐지의 길도 조언했다. 먼저 공식적 사형 집행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하고, 사형제 폐지를 목표로 하는 자유권규약의 제2 선택의정서에 가입하라는 것이다. 시모노비치 위원은 “사형제는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며 이들 과정을 찬찬히 걸어나갈 것을 요구했다.
“한국은 그동안 유엔(UN) 총회의 모라토리엄 결의안에 대해 기권해 왔는데, 이를 찬성으로 바꾸는 것이 시작입니다. 이후 자유권규약 제2 선택의정서에 가입해 폐지 의사를 밝히고, 마지막으로 사형제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봄 직합니다.”
최민영 현소은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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