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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10 19:02 수정 : 2018.07.11 10:18

[짬] 반올림 활동가 임자운 변호사

반올림 활동가 임자운 변호사.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스물두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그리고 2011년 6월 황씨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질병 피해를 본 노동자 중 처음으로 법원의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았다. 이때부터 7년 동안 법원은 반도체·엘시디(LCD) 노동자 13명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판단했다. 법원의 첫 판결 이후 근로복지공단도 반도체 노동자 15명의 산업재해 피해를 인정했다. 질병의 업무관련성을 부정하는 대기업에 맞서 반도체 노동자 28명의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뇌종양, 난소암, 다발성경화증, 림프종, 유방암, 폐암, 불임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까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활동가인 임자운(38·사법연수원 42기) 변호사의 노력이 있었다.

최근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세미나와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익인권 분야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그동안 받은 판결을 바탕으로 ‘반도체 노동자 업무상 질병 인정 사례’를 분석해 발표한 임 변호사를 지난 4일 서울 동작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만났다. 반올림은 2013년 연수원을 수료한 임 변호사의 첫 일터였다. 임 변호사는 “법학과 진학도 사법시험 공부도 주변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휩쓸리듯 공부를 시작했더니 5년 반이나 걸려 합격했죠”라고 말했다. 대학생 때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신문 모니터링 활동을 하며 사회문제에 눈 뜬 임 변호사는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들과 달리 즐겁게 일하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들을 보며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비영리 변호사를 후원하기 위해 42기 연수원생들이 만든 ‘낭만펀드’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임 변호사는 공익인권 변호사가 되기로 했고, 반올림 활동을 선택했다.

그러나 새내기 변호사에게 산업재해, 그것도 전례가 없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는 쉽지 않았다. 확산, 포토, 식각 등 가공 공정을 거쳐 조립·검사 공정을 지나 완성되는 반도체 제조 과정은 그 자체로 낯설었다. 노동자들이 취급한 각종 화학제품의 이름뿐 아니라 다발성경화증 같은 희귀 질병의 이름도 임 변호사가 부딪쳐야 하는 벽이었다. “2013년 3월부터 반올림에서 상임활동가로 일했는데, 그해 5월 이은주·김미선·이소정(가명)씨의 소송을 처음으로 전담해서 맡게 됐습니다. 그들의 질병인 난소암과 다발성경화증은 산재로 인정된 사례가 없어 정말 어려운 사건이었어요. 첫 변론 기일 통지서를 받고 법정에 갈 때의 두려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누구보다 내용을 잘 아는 이종란 노무사와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가 곁에 있다는 것에서 자신감을 얻어야 했습니다.”

5년간 삼성반도체 직업병 변론
피해자 28명 산재 인정 이끌어
자료 부족에 산재보험 취지 강조
대법 산재인정 기준 확대 ‘선물’

민언련 모니터링하며 사회 눈떠
연수원 동기 지원으로 인권변호길

임 변호사는 5년 동안 반올림 사건을 들고 법정에 서면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입증자료 부족’의 문제를 꼽았다. “반도체 공정 일반에 대한 연구들은 있었지만 이 노동자의 구체적인 업무환경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삼성이나 고용노동부는 ‘영업 비밀’이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요. 또 공장의 작업 환경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입증해야 하는데 질병의 원인부터가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의사도 모르는 걸 피해자가 밝혀야 했던 거죠.”

반올림 활동가 임자운 변호사.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답답해하던 임 변호사는 <노동특수이론 및 업무상 재해 관련 소송>이라는 사법연수원 교재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업무와 질병의 상당인과관계 입증을 위해서 반드시 의학적 감정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상 재해 여부 판정의 본질은 해당 사안이 업무상 재해보상제도를 적용하여 구제할 만한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학판정이 아니고 법률판단이다.’ 임 변호사는 이 내용으로 직업병 문제가 다투어지는 판을 흔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업무상 재해 여부 판정이 법률판단의 영역이라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확인’하는 문제가 아니라 ‘평가’하는 문제여야 해요. 그 평가는 노동자가 처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어야 하고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해야 하죠. 입증자료 부족의 문제는 전적으로 회사와 정부의 잘못, 혹은 의학의 한계 탓이었어요. 공단 측 재해조사가 매우 부실하게 이루어진 탓도 컸죠. 그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법률판단이라고 볼 수 없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픈 노동자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면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에도 반하고요. 법정에서 그러한 문제를 강조하며 산재보험제도가 이 노동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삼성 직업병 문제에 뛰어든 임 변호사를 포함한 여러 변호사의 고군분투에 대법원이 마침내 응답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17년 8월29일 삼성 엘시디 공장에서 일했던 이아무개씨의 다발성경화증이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하면서, 산재 인정 기준을 크게 넓혔다. 대법원은 먼저 “산재보험 제도는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 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궁극적으로 경제·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여 안정적으로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며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작업 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임 변호사 등이 하급심에서 주장했던 내용들이 담긴 ‘종합선물세트’ 같은 판결이었다.

반올림 활동가로서 임 변호사의 역할은 법정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직업병 피해 보상과 예방을 위한 삼성과의 교섭, 1000일이 넘은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 농성,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삼성 노동자 백혈병 문제를 알리는 강연까지 그의 활동은 변호사와 활동가를 넘나들었다.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며 임 변호사가 말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바라보는 법원과 정부의 시각이 바뀌고, 몇몇 기업들도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 과정에 일부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최대 가해자로 꼽히는 삼성의 태도를 바꾸지는 못한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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