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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노 이사장이 버지니아 알링톤 자택 공부방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국민이 촛불 혁명을 거치며 확고한 평화통일 의지를 가지고 있고 한국 정부가 남북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아 남·북·미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가리라 믿고 있어요.” 사진 윤흥노 이사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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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노 이사장의 딸인 윤미진 미 코넬대 건축학부 학장. ?Andy 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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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디시 흑인 빈민가 40년 의술
딸 윤미진 교수 코넬대 첫 여성 학장 지난해 ‘민문연’ 워싱턴 이사장 맡아
“미-일 외교문서 등 사료 발굴할 터”
평통 지회장도 맡아 ‘평화 로비’ 분주 1945년 천안에서 태어난 윤 이사장은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1973년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는 국내 의대 졸업생 800명 가운데 300명이 미국행을 택하던 시절이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의사가 부족한 미국이 외국인에게 의사 문호를 대폭 넓혔죠.” 유신헌법이 통과된 한국에서 별 희망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이민 결심을 부추겼단다. “75년부터 워싱턴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았는데 동네 주민들이 찾아왔죠.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가 되리라는 마음에 초청에 응했어요. 흑인들은 정이 많아요. 어린 애들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날 보고 인사해요. 정이 들어 못 떠나죠. 주민의 경제, 교육 수준이 떨어져 환자가 질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서 오는 사례가 많아요. 누구보다 의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어서 더 보람을 느껴요.” 그는 도올 김용옥과 사돈 관계다. “함석헌 선생 제자이자 도올의 큰형 김용준 교수가 제 자형이죠. 자형 부친이 의사여서 가정 형편이 좋았어요. 그래서 당시 씨알농장을 하던 함 선생이 기독교 집안인 사돈 댁에서 매일 아침을 드셨죠. 저도 당시 향학열에 들떠 누님 집 간다는 핑계로 그집을 자주 갔어요. 함 선생님 말씀을 경청하면서 민족의식이나 독재에 대한 무폭력 저항 등의 사상에 눈을 떴죠. ‘생각하는 백성이어야 산다’는 선생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간 두차례 북한을 찾았다. 2007년엔 6·15 행사 미국 대표로 평양을 찾았고 재작년엔 2주간 북한의 지방을 둘러봤단다. “재작년 가보니 북한의 산에 나무가 울창해요. 물어보니 이젠 시골에서도 가스로 밥을 한다더군요. 아이들도 눈에 띄게 키가 커 이제는 식량이 해결되어가는구나 생각했죠. 여자 아이들이 코 성형수술을 한 걸 보고 놀래기도 했죠.” 내년엔 민주평통 워싱턴 지회장 자격으로 미 연방의회를 두차례 찾을 계획이다. 한반도 정책을 다루는 의원과 의원 보좌관을 만나 ‘한반도 평화 로비’를 하기 위해서다. 나카 회장 때도 미 국무성과 연방 의회를 매년 찾았단다. “미 정부와 세계 모든 나라들의 대사관이 있는 워싱턴은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알리는데 가장 중요한 장소이죠. 미 주류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은 삼성·현대는 알아도 우리가 분단되고 외세와 위정자들에 의해 항구적 분단 상태로 갈 위험성이 있다는 건 몰라요. 그들에게 한반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주는 게 중요하죠. 그들을 만나 한국계 시민권자의 남북 통일에 대한 인식을 전해줍니다. 의회 인사들도 자신의 식견을 넓혀주는 이런 정보 제공을 고맙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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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북한 방문 때 윤흥노 이사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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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방북 때 윤 이사장이 찍은 북한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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