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26 19:15
수정 : 2018.09.27 01:21
[짬] ‘참여소통 교육의 달인’ 송형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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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명예퇴직한 송형호 교사.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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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부터 교단에 섰으니 올해로 34년이다. 1989년 전교조 창립에 참여해 해직 5년의 고통도 겪었다. 복직 뒤엔 ‘참여소통 교육의 달인’이란 별칭이 붙었다. 담임을 할 때 그는 스스로 정한 ‘3불 원칙’을 지켰다. 체벌과 말로 야단치기, 학부모에게 (학생) 뒷담 까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길 땐 먼저 지적하는 학생에게 문화상품권 만 원을 줬단다. “원인을 알면 나무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나무라는 대신 소통을 시도했다. 아이는 물론 아이를 가장 잘 아는 학부모도 소통 대상이었다. 그의 손전화를 보니 학생들과 소통하는 단톡방이 100개가 넘었다.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은 내 메신저 스팸에 시달려요. 집요하게 보내죠. 아이들과 소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요.” ‘소문난 참 교사’ 송형호 교사 얘기다. 그가 지난여름 정년을 4년 남기고 교단을 떠났다. 명예퇴직하면서 <송샘의 아름다운 수업>(에듀니티)이란 책도 냈다. 지난 세월 교단에 새긴 흔적이 담겼다. 2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어머니가 치매 증상이 있어요.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지난 34년 동안 별의별 궁리를 다 하며 가르치는 방법을 찾았는데 이걸 보급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요즘 아이들이 많이 우울하잖아요. 이들을 가르칠 쉬운 노하우를 선생님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단을 떠났지만 실감은 크지 않단다. “단톡방에서 늘 아이들과 대화하니 학교를 떠난 것 같지 않아요. 지금도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는 글을 보내주죠.”
책엔 아이들의 ‘낯선’ 행동을 질책 대신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진 사례들이 여럿 나온다. “낯선 행동의 으뜸 원인은 우울감이죠. 아이들의 자존과 소속감을 높이는 게 중요해요.” 반 학생들 모두에게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맡기고, 칭찬팀장을 정해 교과 선생님의 사소한 칭찬이라도 기록하도록 한 이유다. 이 칭찬 메모는 종례신문을 통해 반 친구들과 학부모에게 전파했다. <용서의 기술> <부모와 십대 사이>와 같은 자녀 양육을 위한 학부모 권장 도서목록을 만들어 까칠한 학부모들에겐 책 선물도 했다. “학부모가 까칠하다고 교사가 소 닭 보듯 해선 안 됩니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이는 엄마잖아요.” 왜 책을? “교사가 학부모에게 말로 하면 갑이 되잖아요. 옛날 선생님 관념이 지금도 있어요. 말보다는 책을 권하는 게 효과적이죠.”
그는 퇴직 뒤 파주 문산과 제주 애월지역 학교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아이들의 낯선 행동 때문에 전국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더군요. 교사들이 몸살을 앓으면 자꾸 교과서 뒤로 숨어요. 이래선 답이 안 나와요. 상처받더라도 교사들은 아이들과 부딪혀야 해요.” 조언은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밥 사주는 게 가장 현명하게 그들과 부딪히는 방법이죠. 밥을 몇 번 먹다 보면 아이들이 ‘정말 나를 위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다림의 세월이죠.” 그는 책에서 “무기력한 아이는 없다. 다만 아이의 에너지가 어디로 흐르는지 교사가 알지 못할 뿐이다”라고 썼다. “아이들 공부 스타일이 다 달라요. 교사는 아이들 각자의 키워드를 읽어야죠.” 참여와 소통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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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복직 뒤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고민이 많던 송형호 교사를 구해 준 그림이다. 만화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아이에게 단어로 그림을 그려오도록 했더니 이렇게 15개의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했단다. 그 뒤로 송 교사는 학생 그림을 수업 자료로 활용해 그의 표현대로 수업이 대박이 났다고 한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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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가 있었다. 5년 만에 교단에 선 1994년 학교는 퍽 달라 보였다. “디지털 세대 학생들이었죠. 이들은 자신들한테 익숙한 양방향 소통이 안 되면 분노하더군요. 처음엔 수업이 되지 않아 입술이 헤졌고 교장 선생님은 제가 지도하는 반 아이들 성적이 크게 떨어진다고 사유서를 내라고도 했죠.” 그해 10월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지만 만화 그림에 소질이 있는 한 학생을 만났다. “인심 쓰듯 단어로 그림을 그려오라고 종이 한장을 줬어요. 그 다음 날 15컷의 그림을 가지고 왔더군요. 이 학생을 격려하려고 만화 속 단어 중간 철자를 지우고 그림을 복사해 수업에 활용했죠. 이 수업이 대박이 났어요.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더군요. 수업이 아니라 놀이였죠. 그 뒤론 그림 숙제를 내고 그림이 안 되면 퍼즐이라도 만들어오라고 했죠.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그리면서 외우면 잘 되니 재밌어했어요. 이 학생이 나를 구제했죠.” ‘문제아’라고 질책만 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시키려고 한 게 교사까지 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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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서든리(suddenly) 철자에 뜻까지 더해 만든 그림이다. 그는 이런 그림이 1만장 정도 된다면서 세계로 수출하고 싶다고 했다. 퇴직 뒤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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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사가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 때 쑥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씌어주는 모자이크 안경과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용도로 쓰는 마이크 모양의 장난감을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여중생은 손을 대 깨울 수가 없어 소리 나는 장난감을 씁니다. 잠자던 학생도 이 장난감으로 깨우면 재밌어합니다.” 강성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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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교사 접고 최근 명예퇴직
‘송샘의 아름다운 수업’ 책도 내
“그간 터득 ‘교육노하우’ 전할 터
아이들 낯선 행동은 우울감 때문
질책 대신 자존과 소속감 높여줘야”
학생들과 100개 이상 단톡방 소통
2005년부턴 영 단어 철자에 그 뜻까지 더한 그림을 수업에 활용해왔단다. 예컨대 서든리(suddenly)라는 철자 그림에 단어 뜻인 놀라움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들어가는 식이다. 이런 ‘영 단어 뜻 그림’이 1만장 이상 있다고 했다. 2년 전엔 조깅 중 언뜻 착상이 떠올라 ‘관계대명사’ 등 영어 문법을 가사로 바꾼 개사곡을 70개 이상 만들었단다. 4년 전엔 자신의 수업을 페이스북 생중계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모두 재밌는 수업을 위해서다. “제 학생들이 다 페북 친구죠. 중계하니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열광해요. (이 중계에) 많으면 1500명까지 ‘좋아요’가 나와요. 아이들이 ‘선생님, 저 페북 스타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농담도 하죠. 쑥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겐 모자이크 안경을 씌워주었어요.”
그는 ‘교사의 교사’이기도 하다. 과목이나 생활 지도 등 주제별로 따로 수십 개의 단톡방을 열어 동료 교사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가 수업과 학교 운영 노하우 전파를 위해 연 인터넷 카페 참여소통교육모임(2006년)과 돌봄치유교실(2011)은 회원이 각각 1만명과 2만명이다.
그가 학교 현장에서 나눈 소통의 밀도를 보여준 사례가 있다. 4년 전 공무 병가로 5개월 휴직했을 때 얘기다. 병가를 얻기 위해 1년 동안 학생·학부모·교사와 문자·카톡으로 나눈 대화 내용을 제시했단다. “에이 4용지로 600매나 됐어요.”
그는 한국외대 영어과 79학번이다. 70명 가까운 남자 동기생 가운데 그가 유일한 교사다. 교사가 된 이유를 물었더니 답이 명쾌하다. “제가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거든요. 지금도 교사들 가족 모임을 하면 아이들 담당은 제가 하죠.”
후배 교사에게 주고 싶은 말은? “교사의 일은 수업과 생활 지도, 행정이죠. 셋 중 무엇이 중요한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 판단이 흐트러지면 안 돼요. 교사는 수업 시간에 살아 있어야 해요. 수업에서 아이들과 행복하지 못하면 생활 지도도 안 됩니다. 수업은 열심히 하지 말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다양하게 해야죠. 재미로 죽여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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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사 손전화 단톡방 목록 중 일부. 1824는 올 1학기 영어 과목을 가르친 천호중 2학년 4반 학생들 단톡방을 말한다. 강성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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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교육의 문제점을 짚어 달라고 했더니 이런 얘기를 했다. “진로교육이나 학교폭력 예방 교육에서 (교육 당국이) 정책 오류를 저질렀어요. 급하게 만들다 보니 교육과정을 바꾸지 못하고 법으로만 강제했어요. 영어와 같은 각 과목 교과서에 진로교육이나 학교폭력 예방 교육의 키워드인 소통과 배려, 공감 이런 가치가 들어와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사귀게 된 사연이 재밌다. 해직 뒤 전교조 지회 상근자로 일할 때 아내는 현장 조합원이었다. “1989년 경희대에서 열린 전교조 집회 때 경찰이 대학 안까지 진입했어요. 그때 전교조 조합원들이 맨몸으로 맞서 경찰을 밀어내 집회를 사수했죠. 너무 기뻐 지회 뒤풀이 때 아내 손을 처음 잡았어요. 하하.”
퇴직을 앞두고 교육청에 일주일에 2~3일만 일하는 시간선택 근무제를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단다.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행정적으로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는 우울한 시대에 많이 지쳐있는 교사들에게 조건 없이 쉴 기회가 주어졌으면 했다. “지금은 20년 이상 근무하면 1년 자율연수 무급휴직을 할 수 있어요. 휴직 기회를 더 늘려 5년에 한 번 정도는 자율연수 무급휴직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3교시 수업 때인데 아이(고2)에게 밥 사달라는 문자가 왔어요. 1학년 때 제가 담임을 한 아이입니다. 이혼 가정의 아이였죠. 아버지도 집에 안 계시고 어머니마저 두 달 잠수를 탔다고 힘들어하더군요. 그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선생님도 내 우울을 스스로 돌보며 살았다. 화가 날 때는 돌멩이를 집어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던져라. 선생님도 103개까지 던진 적이 있다’고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유쾌한 교사이지만 그 역시 우울증의 고통을 잠시 겪었다. 동료 교사들과의 업무 분장 갈등 때문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우울한 아이들 때문에 지친 교사들을 위해 책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교사상처>(김현수, 2014)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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