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30 23:01
수정 : 2018.10.01 19:19
[짬] ‘시력 50년’ 기념문집 헌정받는 서정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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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배 동료 문인들이 지은 ‘서정춘 시’만 40편에 이르는 서정춘 시인은 그 자신 누구보다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봄 인사동에서 소산 박대성 화백 전시회 때 모습.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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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이 그거시 참 황당한 현상이라…, (내가) 말실수를 많이 하니께 동물원 원숭이 보듯 재미있는지, (나를) 내려놓으니 밀가루 반죽하듯 맘대로 편하게 자기들 식으로 빚는 것도 같고… 이유가 나도 궁금하다니께요.”
그는 내내 부끄럽다면서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자의 반 타의 반’ 동의를 했다고 덧붙였다. 바로 ‘시력 50년’ 기념으로 특별한 자료집을 헌정받는 <시인 서정춘>(가제)의 주인공 서정춘(77) 시인이다.
일찍이 문단에서 그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인 ‘죽편1―여행’은 가객 장사익이 노래로 부를 정도로 예술인들의 애송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그를 주제나 소재로 삼은 작품’을 모은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선후배 문인들을 비롯해 예술인들이 ‘한 시인’에게 영감을 얻어 창작을 한 것을 두고, 30일 전화로 만난 서 시인은 ‘왜냐’고 되물었다.
1968년 서정주 심사한 신춘문예 당선
정년퇴직때 등단 28년만에야 첫 시집
지금껏 시집 5편…과작으로도 유명
등단 50돌 맞아 자료집 ‘시인 서정춘’
문인들이 노래한 ‘서정춘 시’ 38편 모아
엮은이들 “시적 엄격함에 대한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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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공부 10여년에 쌓인 책 이희승 국어사전 빼고 나머지 한 도라꾸 판 돈으로 한 여자 꼬셔와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 세 들어 살면서 나는 모과 할게 너는 능금 해라 언약하며 니뇨 나뇨 살아온 지 오늘로 50년 오메 징한 사랑아!!’ 서정춘 시인은 2017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한 ‘기념일’에서 일본 사진작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서울 청계천변’(1965년작)에서 시작했던 결혼 생활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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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책으로 남겨두면 좋겠다고, 권유를 했는데 그때마다 한사코 마다하셨어요. 올해는 마침 등단 50돌이시니 더는 미룰 수 없어, 밀어붙였지요.”
<시인 서정춘>의 공동 엮은이이자 역시 시인인 도서출판 비(B)의 조기조 대표는 “현재까지 나온 ‘서정춘’을 노래한 시 40편을 찾아냈고, 이 가운데 38편을 1부에 실었다”고 소개했다. 책의 2부에는 ‘서정춘 시인의 시에 대한 짧은 단평’을 정리하고 수많은 평론들은 목록만 넣었다. 3부에는 서 시인의 가족을 포함한 사진과 연보를 담았다. 지난 2015년 <봄, 파르티잔> 시집 출간 기념으로 열린 시화전 ‘시와 그림, 결혼하다’ 때 이제하, 마광수, 박불똥, 마광수 등 29명의 예술인들이 그려준 작품도 일부 곁들일 예정이다.
‘서정춘 시’를 가장 먼저 쓴 이는 고 박정만 시인이다. 서 시인과 같은 1968년 ‘등단 동기’인 그는 81년 ‘한수산 필화사건’ 때 고문 후유증을 술로 달래다 88년 40대 초반에 세상을 떴다. 작고 직전 3개월 사이 무려 300편의 시를 쏟아낸 그는 서 시인에게 보내는 ‘그리운 형에게’ 등 2편을 유작처럼 남겼다. 서 시인 역시 술중독에 빠진 동기를 일으켜 세우고자 ‘명태―박정만에게’로 화답했다.
서 시인의 글은 비교적 최근에야 공개된 ‘등단 뒷얘기’ 딱 한편이 들어갔다. <신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잠자리 날다'를 뽑아준 심사위원 서정주를 서울 공덕동 자택으로 찾아간 자리에서, 집에서 담근 포도주를 권하며 칭찬하는 대선배 미당에게 “전날 밤 황룡 꿈 꾸고 당선됐습니다”라고 일갈했다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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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사진작가 육명심의 <예술가의 초상> 출간기념 사진전 때 위아래로 나란히 내걸린 서정춘(위)·서정주(아래) 시인의 모습. 미당은 서정춘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작 ‘잠자리 날다’를 뽑은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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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춘 시’는 위로는 60년 등단한 선배인 고 정진규 시인부터 아래로는 2000년 등단한 후배 장이지 시인까지 ‘서정춘’을 지었다. 69년 등단한 동년배인 이시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은 3편이나 썼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맹문재 시인의 ‘그해 봄 서정춘 만세가 있었네’가 나왔다. ‘대통령 탄핵 다음날 우리는 광화문광장에 모여 한바탕 만세를 부른 뒤 골목 식당에 들어갔네/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 한국작가회의 만세! 자유실천위원회 만세!/ 함께한 얼굴들도 서로 부르며 만세! 만세!/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한바탕 더 부른 뒤 서정춘 시인에게 〈부용산〉을 청했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노랫말은 슬펐지만 시인의 목소리는 광장을 울릴 만큼 크고 당당해 우리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불렀네/ 서정춘 만세!’(<시인동네> 2018년 9월호)
책 출간을 가장 먼저 제안하고 공동 엮은이로 나선 하종오 시인은 “김수영 시인을 비롯해 작고 문인에게 바치는 추모나 헌정시는 적지 않지만, 당대에 이처럼 많은 작품의 주인공이 된 인물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두 엮은이를 비롯해 시적 성향이 전혀 다른 시인들이 모두 ‘서정춘’을 좋아하는 현상도 이채롭다. “서 시인은 ‘구두쇠’라 부를 만큼 과작이고, 단문이면서, 서정적이죠. 다작에 장문이고 참여적인 저와는 정반대라 할 수 있죠.”(하종오) “우리 둘 다 개인적으로 서 시인과 사적으로 인연이 없는 ‘의외의 후배’라는 점에서 더 뜻깊은 작업이죠.”(조기조)
서 시인이 등단 28년 만에야 첫 시집을 펴낸 연유도 지금과 비슷하다. 그는 동향 문인 김승옥 작가의 소개로 입사한 동화출판공사에서 고졸 학력의 한계를 딛고 28년 봉직하고 정년퇴직한 날에 맞춰 <죽편>(1996년·동학사)을 펴냈다. “퇴직하고 나면 쓸쓸해질 것 같아, 한번 묶어 본 것이다. 20년 전부터 시집을 내자고 보채온 유재영(동학사 대표) 시인이 아니었으면 그나마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지금껏 그는 5편의 시집을 냈을 뿐이다.
그처럼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꺼리는 서 시인에게 수많은 예술인들이 끌리는 이유는 정말 무엇일까? 하 시인은 “아마도 작품의 엄격성에 대한 공감과 존경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정작 서 시인은 “이달 말께 책이 나오면 조촐한 자리를 만들어,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싶다”며 웃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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