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합 소리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 최선민(11) 군이 죽도로 학부모 유덕훈(43)씨의 머리를 쳤다. 심판 진정훈 사범(51·검도 5단)이 최군을 따라 “머리”라고 소리치며 왼쪽 손을 들었다. 최군이 득점했다는 의미다. 이후 제한시간 3분 동안 학부모 유씨는 공격에 성공하지 못했고, 최군의 승리가 확정됐다. 최군은 “이길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머리에 검이 들어가서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최군이 유씨와 시합한 건 오늘이 세 번째다. 최군은 이날 처음 학부모와의 검도시합에서 승리했다.
지난 1일 서울 동작구 영본초등학교 체육관에서는 아이와 학부모 간의 검도 시합이 벌어졌다. 이처럼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검도를 할 수 있게 된 건 진정훈 씨가 매주 토요일 ‘영본초 무료 검도교실’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자동차 판금·도장 장비업체에서 일하는 진씨는 매주 토요일 ‘사범님’으로 변신해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검도 수업을 한다. <한겨레>가 영본초를 찾은 지난 1일엔 25명의 아이들이 승급 심사가 한창이었다.
진씨는 29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검도를 시작했다. ‘예순살 즈음 은퇴 뒤 검도를 가르치며 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진씨의 ‘검도 재능기부’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13년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버지회 활동을 했는데 당시 교장·교감 선생님이 진씨가 검도를 하는 걸 알고 검도교실 운영을 제안한 것이다. “영본초는 제 모교이자 두 아이가 다닌 학교에요” 10명 남짓한 학생들과 시작한 진씨의 검도 교실은 재작년께 수강생이 60명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지금은 영본초 학생 27명과 학부모 4명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올해로 6년째 무료로 운영되는 진씨의 검도교실의 가장 큰 특징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점이다. “학교 쪽에서 조부모-부모-자녀 3대가 함께 하는 검도교실로 꾸며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요즘은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부모와 함께 듣는 검도교실이 됐습니다.” 자녀와 함께 수업을 듣는 부모들은 “공통 화젯거리가 생겨 검도 수업을 듣기 전보다 아이와 더 가까워졌다”며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 재능기부를 하는 진 사범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진정훈 5단 2013년 아버지회 활동 때 제안받아 ‘아이-학부모’ 함께하는 검도교실 무료 운영 학부모들 “덕분에 아이와 가까워졌다” 감사
지난 1일 진씨가 운영하는 영본초 무료 검도교실에서는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승급심사가 있었다. 검도교실 수업을 듣는 영본초등학교 학생들이 승급심사에 임하고 있다.
정작 진씨는 검도교실을 운영하며 자신이 더 얻은 게 많다고 몸을 낮춘다. 진씨는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는 검도 4단이었는데 검도 사범 자격증을 따고자 5단으로 단도 높였다”며 “더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검도교실을 하면서 사범 자격증뿐만 아니라 생활체육 지도자 자격도 땄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선생님’ 역할을 하다보니, 말과 행동에 조심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기회도 됐다.
영본초 역시 6년간 검도교실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게 지원 중이다. 윤선영 영본초 문예방과후부장은 “주말에 학교에서 학생들 활동이 이뤄지니 교사가 나와야 하고, 학부모들의 학교 출입도 교사들이 확인해야 하는 등 신경써야 할 일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검도교실의 좋은 취지를 이어가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게 최대한 배려 중이다”고 말했다.
진씨가 검도를 하면서 착용해야 하는 보호장구인 ‘호구’를 수강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좋은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검도 수업에서 영본초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쑥쑥 자란다. 지난해에는 진씨로부터 검도를 배운 학생이 동작구청장배 검도대회에서 5·6학년부 우승을 차지했고, 올해는 6학년 유승윤(12)군이 같은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다. 교사들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다가 검도 수업을 듣고 좋아진 아이들도 여럿이다”고 말했다.
진씨는 오랫동안 검도교실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저보다 더 훌륭한 영본초 출신의 검도인이 있으면 함께 수업을 꾸려가도 좋을 것 같아요. 졸업생의 재능기부로 이어가는 이 검도교실이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정이 생겨서 이사를 가지 않는 한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은 끝까지 검도교실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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