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1.12 09:43 수정 : 2015.01.12 09:43

김혜진 소설 <와와의 문> ⓒ이현경



김혜진 소설 <1화>



와와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말레이시아 사람이었나. 아니, 미얀마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와와를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다. 몇 차례 자리를 옮기고 책을 펼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톡톡 쳤다.

하이.

와와였다.

와와는 체구가 작고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머리숱이 거의 없었다. 천진한 표정과 수줍은 듯 두 손을 모은 자세 때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하이, 했고 곧바로 자책했다. 조금 더 상냥하게 인사할 수도 있었다는 후회가 들어서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와와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캐나다인 강사 제임스는 들어오자마자 수강생들의 이름을 하나씩 확인했다. 와와는 자신의 이름을 두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와와. 와와. 그런 후에야 사람들은 와와가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임스는 자신이 와와의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제임스제임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거라고 농담했지만 와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웃기만 했다. 알아듣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와와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았다. 우선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수강생들끼리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겨우 고개만 까닥하는 식으로 인사만 했던 사람들은 날씨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학원 정보를 나누면서 어떻게든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다. 와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쫓아다니곤 했다. 눈이 마주치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나도 몇 번이고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잠깐 웃어주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때 와와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모든 사람이 다 영어로 말할 때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와와의 발음은 악센트가 너무 강하거나 비음이 섞여 있거나 모국어로 굳어진 습관과 버릇 같은 것들로 대체로 낯설고 이상했다.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해야 했고 와와는 같은 말을 똑같이 반복해야 했다. 가끔 와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번은 와와 곁에 선 제임스가 이런 말을 소곤거렸다. 수강생들이 조그마한 그림 카드를 들고 자리를 바꿔가며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와와, 말을 해야 해. 그래야 실력이 늘어.

와와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그게 서툰 영어 실력 때문인지, 낯선 환경 탓인지 알 수 없었지만 와와는 그때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제임스가 검지를 세우고 질책하듯 말했기 때문에 어쩐지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와와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잠깐 두 손을 하나로 모으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포즈를 취했지만 언제나처럼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혜진(소설가)



김혜진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치킨 런>이 당선되었다. 2013년 《중앙역》으로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다. 2012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혜진의 <와와의 문>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전체

정치

사회

경제

지난주

광고

트위터 실시간글

bjchina123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EuiQKIM RT @qfarmm : [포토]42년 만에 최악 가뭄···위성사진으로 본 소양강댐 http://t.co/BMpS2UjVoq http://t.co/r4OxEINQ1z

LAST_Korea RT @cjkcsek : [사설] ‘어린이 밥그릇’까지 종북 딱지 붙이나 홍준표의 유치한 종북몰이는 자신의 ‘저질 정치인’ 면모만 부각시키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http://t.co/XxOwP51oyK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할머니들도 ‘기껏 1번 찍어줬더니 아그들 밥값 가지고…’ 성토”http://t.co/ukHxPKTNnm[오마이] 홍준표, '해외골프' 뒤 첫 출근길에 비난 펼침막http://t.co/xn…

HillhumIna RT @jmseek21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 http://t.co/whlFjwWSl9

CbalsZotto 보궐선거용 거짓 립서비스~ “ @shreka3880 : ‘세월호 피해자 가족’ 챙기기 나선 새누리당 http://t.co/tfkk6gGEci 세월호 진상조사나 방해나 하자말라”

cess0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할까요.http://t.co/RyPp5DzeRr[미디어오늘] 유가족들 우려가 현실이 됐다http://t.co/coAAtDbtRQ

sookpoet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헌재 ‘김영란법’ 헌법소원 심리키로http://t.co/UMzV2bA4hY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