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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5 10:04 수정 : 2015.01.15 10:04

김혜진 소설 <4화>



너 저 사람들 아니?

횡단보도에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와와가 물었다. 몰라서 묻는 것인지, 아는 걸 확인하려고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와가 중얼거렸다.

정말 슬픈 일이야.

사람들은 천막을 세워놓고 그곳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잤다. 1년 내내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 한가운데서 그들은 종일 피켓을 들고 서 있거나 서명을 받거나 행진을 하거나 인터뷰를 하고 때로는 천막 한가운데 멍하니 서서 천천히 지나가는 계절을 내다봤다. 나도 몇 번 그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어쩐지 구경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늘 빠르게 그곳을 지나치곤 했었다. 와와는 천막 주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렇게 물었다.

지금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크고 또렷해서 누구나 그 말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뭐라고 번역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어려운 말도 아닌데.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쉬운 몇 개의 단어로도 충분했다.

글쎄. 잘 모르겠어.

한참을 고민하고 나는 겨우 그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근처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나는 햄과 치즈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를 주문했고 와와는 플레인 베이글을 골랐다. 커피 두 잔이 먼저 나왔다. 사실 나는 와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지난번 수업 시간 때 와와가 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출신을 묻고 답하는 연습을 할 때 와와는 제임스에게 자신의 고향을 밝혔다.

아, 거기. 나도 알아. 큰 지진이 난 곳이잖아.

제임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했다. 와와는 그곳이 자신의 고향이며 1년 전에 거길 떠나왔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잖아. 그렇지?

제임스가 알은체를 하면 와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는 게 도움이 될까, 안 될까 망설이다가 적당히 둘러댔다. 글을 써야 하는데 사실 뭘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밤에는 맥주를 마시고 낮에는 거리를 쏘다닌다는 이야기였다. 와와는 먹기 좋게 빵을 찢으며 반색을 했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다. 와와의 손은 작고 마르고 검었다. 나는 냅킨과 물티슈를 가져와 테이블 모서리에 놓아두었다. 내가 샌드위치를 다 먹어갈 때쯤 와와가 입을 열었다. 와와가 아무런 말이 없어서 나는 샌드위치를 하나 더 먹을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먹고 또 먹고 자꾸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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