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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6 10:17 수정 : 2015.01.16 10:17

김혜진 소설 <5화>



우리 집에는 선풍기가 있었어.

와와가 말했다. 자기네 나라말로 선풍기라는 단어를 말했기 때문에 나는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와와가 손가락을 세워 테이블 위에 대충의 모양을 그린 다음에야 그게 선풍기라는 걸 깨달았다. 아, 선풍기. 알은체했지만 그건 이제껏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선풍기였다. 선풍기구나, 짐작한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냥 팬이라고만 말했다면 난 전혀 엉뚱한 걸 상상했을 게 분명했다.

10년 전에 우리 가족은 그걸 중고 시장에서 아주 싼 가격에 샀어.

와와는 환하게 웃었다.

와와, 그날 그 마을에 있었던 지진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어? 내 질문은 그것이었다. 처음엔 와와가 내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와와는 계속 선풍기 이야기만 했다. 뭘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김없이 선풍기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선풍기 주위를 맴맴 돌다가 한두 걸음쯤 벗어났다가 강력한 탄성이 붙은 것처럼 되돌아오곤 했다. 때문에 이야기의 온도는 차가워지지도 뜨거워지지도 않고 쾌적하다 싶은 정도로만 이어지다 말다가 했다.

언젠가 그 선풍기 목이 부러졌었어. 내가 발로 선풍기를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았어. 내 남편 말이야. 그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손발이 컸거든.

와와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아이를 두었다고 했다. 열아홉이 되던 해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3년 터울로 내리 세 아이를 낳은 거였다. 그의 남편은 군인이었고 와와는 간호사였는데 어느 날 남편의 근무지가 그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말했다. 그곳. 지진이 난 지역이었다. 와와는 그 지역에서 20년을 살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고 말하며 와와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때 당시의 모습을 어느 기사에서 본 적이 있었다. 길 한가운데가 입을 벌린 듯 찢어져 있고 집과 자동차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휘어진 철로와 집 밖으로 쏟아져 나온 온갖 잡동사니 위로 커다란 나무들이 쓰러져 있던 장면도 생각난다. 취재와 보도를 목적으로 전 세계의 언론사들이 신속하게 그곳으로 모여들었지만 어쨌든 지진이 지나간 다음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모든 기사와 보도와 기록은 지진 후에 가능했다. 와와는 당시 그 지진과 함께 그 마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지진이 거기 있을 때 그것을 몸으로 느낀 사람이었고 그건 내가 아는 사람 중 와와가 유일했다.

와와는 자신의 집 구조를 설명하는 데는 오래 공을 들였다. 한참 만에 나무로 만든 거실에 늘 먼지가 떠다녔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게 목이 부러진 선풍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와와는 또 웃었다. 다시금 선풍기 이야기였다. 가끔씩 와와의 이야기가 내 질문으로부터 너무 멀리까지 갔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혹은 정에 관한 이야기처럼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날 나는 정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그날은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그곳에 갔다 왔나 하는 착각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또 조금 지나면 그런 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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