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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0 09:16 수정 : 2015.01.20 09:16

김혜진 소설 <7화>



너는 혼자 사니?

며칠 뒤 와와가 물었다. 우리는 지난번처럼 그 베이커리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을이라 할 만한 빛깔과 공기 같은 것들이 먼 쪽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나는 대학을 가고부터 혼자 살았고 여섯 번 이사를 했고 내 고향은 서울이 아니고 기차를 타고 서너 시간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와와가 하는 질문 중엔 이상한 것도 많았지만 나는 성실하게 답했다. 이를테면 너는 주로 뭘 먹니? 같은 질문이 그랬다. 밥을 먹어. 밥, 밥, 알지? 아무래도 영어였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비스듬히 어긋나거나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우리는 한동안 호구조사 같은, 혹은 심문을 하는 것 같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그런 대화는 같은 자리에 서서 크고 단단한 벽에 공을 던지고 받는 것 같았다. 공을 아무리 던져도 벽엔 흠집 하나 생기지 않고 공은 늘 던진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날 이야기를 좀 해줄 수 있어?

나는 다시 물었다. 오래된 선풍기와 디딜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던 거실, 남편이 만들었다는 의자 같은 거 말고 네 발밑에서 올라오던 선명하고 낯선 감각에 대해 이야기해보라는 뜻이었다. 고요한 풍경을 찢고 가르고 튀어나온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일상을 뒤바꿔놓는지, 무너지는 어느 오후의 길 위에서 무엇을 놓치고 잃어버렸는지, 순식간에 몸집을 불린 감정들이 어떤 자국과 얼룩을 남기고 지나갔는지 나는 알고 싶었다. 그런 것들이 내 예상과 짐작에서 멀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고 그런 순간엔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내가 다큐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는데 내가 끌어안고 있는 어떤 시간들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그 잠깐 동안은 모든 게 괜찮아졌다.

맞아. 그렇지.

다행히 와와는 자기방어가 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소한 이유로 다른 누군가에게 적개심을 품을 것 같지 않았고 잠이 들기 전에 누군가 한 말을 요리조리 돌려보면서 숨은 의도 같은 걸 찾아내려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와와는 다른 빈 의자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우리 테이블에 와서 의자를 가져가겠다는 남자에게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함께 있는 동안 나는 그런 비슷한 장면을 많이 봤다. 그런 모습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와와는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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