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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1 09:22 수정 : 2015.01.21 09:22

김혜진 소설 <8화>



그날은 날씨가 정말 좋아서 만두를 만들 계획이었어.

와와는 공중에 열 손가락을 펼치고 꼼지락거렸다. 눈부신 햇살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생선 살을 다지고 채소를 데치고 그것들을 커다란 양푼에 넣어 비비고 으깨고 하느라 오후가 다 가버렸다고 설명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다. 알고 보니 그건 그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며칠 전 이야기였다. 만두를 떠올리다 보니 며칠 전 일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이야기는 또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그 만두가 정말 맛있었거든. 너무 맛있어서 그걸 다 먹었어. 식구들이. 그 많은 양을 다 먹고 배탈이 났어. 막내가 말이야.

와와는 한밤중에 슬리퍼를 신고 약국으로 뛰어갔다고 했다. 문이 닫혀 있어서 그 앞에서 문을 두드리면서 두 시간 넘게 서 있었다고 말했다. 그 동네에는 약국이 거기 딱 하나밖에 없었고 그 약사는 그날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지붕에 깔려 죽었다고 와와가 말했을 때 나는 좀 놀랐다.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뉴스에서 그런 장면을 봤다고 말했다.

어떤 장면?

와와가 물었다. 나는 길이 갈라지고 집이 무너지고 가로수가 뽑히고 전봇대가 쓰러진 풍경을 두서없이 묘사했다. 와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그건 내 착각일지도 몰랐다. 와와가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렇지는 않았어.

그럼 어떤 것이었어? 어떻게 죽은 건데?

와와는 테이블 여기저기를 매만지며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국에 와서는 만두를 거의 먹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언젠가 야채 만두를 사 먹은 적이 있는데 고기가 섞여 있는 걸 발견한 후로 어떤 만두를 먹어도 고기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뒤 화가 난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만두 가게에 대한 분노거나 속았다는 것에 대한 울분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사실 와와가 많은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수화를 하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고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은 게 대부분이었다. 조용하고 조심스러웠지만 어쩐지 소란스럽고 어수선해 보이는 그 모습을 나는 참을성 있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겨우 와와를 충동질하고 지나가는 어떤 기미나 조짐 같은 걸 엿본 게 전부였다.

사실 나도 종종 그런 충동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런 충동은 언제나 와와가 내 말을 결코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함께 왔다. 뭐랄까,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둘 다 영어를 잘 못하고 와와는 한국말을 잘 못하고 나는 와와의 모국어를 모르니까. 우리는 서로의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셈이었다. 그럴 땐 내가 디디고 선 견고하고 단단한 것들이 천천히 흔들리고 저 아래에서 뭔가 뜨거운 것들이 움직이고 요동치고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아주 멀고 깊은 곳에서 어떤 것들은 언제나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 순간엔 그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와와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차례 숨을 내쉬고 들이쉬다 보면 충동 같은 건 지나가고 없고 내가 분명히 감지했던 사소한 진동과 파동 같은 것들도 거대하고 단단한 일상 속으로 되돌아가버린 뒤였다.

이제 없어. 그건 거기 없어.

와와는 딱 한 번 지진에 대해 그렇게 더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건 선풍기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테이블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만두를 만들었던 어느 저녁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어쩌면 내게는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말 너머에는 서서히 진동하는 땅이 있고 휘청거리는 건물이 있고 허물어지는 거리 위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허리를 곧게 펴고 의자에 앉은 와와가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대답을 들을 때까지 묻고 또 묻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또 잊을 만하면 찻잔이 떨리고 벽이 흔들리고 견고한 일상을 비집고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와와의 입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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