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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2 09:41 수정 : 2015.01.22 09:41

김혜진 소설 <9화>



한 달이 다 되도록 와와도 나도, 다른 수강생들의 영어 실력도 늘지 않았다. 강의실에서 나누는 대화도 언제나 비슷했다. 월요일이 되면 주말에 서로 뭘 했는지를 물었고 나는 매일 맥주를 마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뭔가 특별한 일을 만들어내야 했다. 나중엔 금방 어떤 말을 해놓고도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리곤 했다.

너는 지난 주말에 무엇을 했니?

한번은 그런 질문을 받고 정의 병원에 갔다고 말해버렸다. 그런 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어 다른 말이 또 다른 말이 차례로 따라 나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는 그것뿐이었다. 다른 많은 진짜들은 멀리에, 그 너머에, 내 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어떤 곳에 있었다. 어쩌면 그 아득한 거리 때문에 늘 진짜라고 여겨지는지도 몰랐다.

정말이니?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던 와와가 돌아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늘 와와가 그랬던 것처럼 웃고 말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글을 썼다. 와와가 내게 들려주었던 선풍기와 만두와 테이블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건 여기에 없고 저 아래 고요히 숨죽이고 있는 어떤 지진에 관한 것이었다. 적어도 쓰는 동안에 나는 그것이 와와의 것이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와와는 매일 빠지지 않고 학원에 나왔다. 제임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와와를 나무랐다. 처음엔 곁에 서서 소곤거리는 정도로만 말했고 시간이 지나자 다른 수강생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를 냈다. 장난 같은 말투였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자 와와는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처음엔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다거나 말을 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더듬더듬 변명이라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와와는 제임스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바닥의 한 지점을 골똘히 노려보고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제임스는 빙글빙글 웃으며 몇 마디를 더 보탰다.

넌 왜 여기 있는 거야? 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넌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거야?

좀 지나치다 싶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와와는 가방을 챙겨 그대로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화가 난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불편한 사람 같았다. 부끄럽고 황당하고 기운 없는 여러 개의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 표정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와와가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안고 가버린 몇 개의 질문들을 알게 되었다. 너의 가족은 몇 명이니? 너는 누구와 사니? 너의 남편은 무슨 일을 하니? 너는 이번 휴가에 무엇을 할 거니? 너는 어떤 날씨를 좋아하니? 너의 아이들은 몇 명이니? 너는 무슨 공부를 했니? 너는 혹은 너의 가족은, 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질문 중 무엇이 와와를 망설이게 하고 머뭇거리게 만들었는지 찾고 싶었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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