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소설 <10화>
다음 날 나는 마지막으로 와와를 만났다.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건물 입구에 서 있는 와와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와와는 얼른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내내 나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나는 멀리까지 가지 않고 학원 근처 카페로 와와를 데려갔다. 글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원고료가 들어와 있었다. 커피 두 잔을 주문했고 내가 계산을 했다. 커피를 반쯤 마신 후 와와는 입을 열었다. 제임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혹시나 했지만 이번에도 내 기대나 바람을 한참 비켜간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와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나도 제임스가 무례하다는 생각을 했어.
제임스의 이름을 말해놓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와와 앞에서 그렇게 거들기까지 했다. 와와는 매일 수업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 다음 제임스의 수업 방식이 나쁜 것만은 아닌데도 어떤 날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 하는, 외국의 늙은 여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오면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스스로를 자책하는 게 싫다고도 말했다. 와와의 말은 두서없이 이어지다 말다가 했다. 나는 내내 식은 커피 잔을 매만지고 남은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모르겠다. 그때처럼 와와가 많은 말은 한 적은 없었는데 나는 예의를 차리듯 와와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카페 안을 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이리저리 구경하게 됐다.
너 내 말을 이해하니?
와와가 물으면 얼른 고개를 끄덕였지만 뜨끔했던 기분은 금세 또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커피 한 잔씩을 더 주문해왔다. 말이 그치면 일어나야지 했지만 와와는 어떤 낌새를 알아챈 사람처럼 서둘러 입을 열곤 했다. 커피가 다시 비어갈 때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와와. 너는 정식으로 학원에 문제를 제기해야 해.
와와가 가진 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의 모국어가 전부였다.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와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한참 만에 이렇게 되물었다.
그런 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와와의 질문은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반문에 가까웠지만 나는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와가 내 눈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결국엔 너도 다를 게 없구나. 똑같구나. 그런 것들을 분명하게 확인한 눈빛이었다. 무언가 들켜버렸다는 기분이, 뒤이어 들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차례로 따라왔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끄러웠다. 일방적으로 인사를 하고 출입문을 밀고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뒤돌아본 순간 다시금 눈이 마주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유리문 너머, 와와는 내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려세우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나를 향해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입술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 똑똑히 보였다.
그건 도움을 청하는 말이었을까.
애써 그런 쪽으로 짐작하려 했지만 와와의 낯선 표정과 굳은 얼굴, 검고 작은 눈동자를 채운 뜨겁고 위험한 기운 같은 것들이 자꾸만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건 어떤 분노와 노여움처럼 느껴졌고 나중엔 나를 향한 비난이나 질책처럼 여겨졌다. 내 귀로 확인하지 못한 와와의 말들을 상상하는 건 곤혹스럽고 불편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꺼번에 떠오른 추측과 억측들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목덜미를 타고 더운 기운이 얼굴로 번져왔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붐비는 거리 쪽으로 향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감정들을 떨쳐내려고 그때부터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했다. 그러나 걷고 또 걸어도 어떤 순간들은 하나의 단어로, 문장으로 설명되지도, 끝까지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나를 꽉 붙잡고 있었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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