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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30 10:06 수정 : 2015.01.30 10:06

조수경 소설 <5화>



*

“넌 분명 작가가 될 거야.”

나에게 처음 그 말을 해준 사람은 유리, 너였다.

여름 무렵, 너와 나는 2층에 있는 내 작은 방에서 숙제 말고도 많은 것을 나눌 만큼 친해졌다. 우리는 담임이나 남자아이들에 대해 얘기했다. 별것 아닌 일들을 비밀스럽게 속닥거렸고 사소한 일에도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일은 나란히 엎드려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그건 당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유행하던 일이었다.

“다 읽었어?”

“아직.”

책 한 권을 가운데에 놓고 함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식으로 너와 나는 벌써 몇 권의 로맨스 소설을 함께 본 사이였다. 중·고등학생 언니를 둔 아이들이 집에서 몰래 책을 가져오면 반 아이들이 순서대로 돌려보았는데, 그 순서란 언제나 더디게 왔고 너와 나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직접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함께 등장인물과 배경, 그리고 제목을 정했다.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언제나 로맨스였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음 날 노트를 받아간 네가 내용을 이어갔다. 노트에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나라의 성(城)과 이국의 이름을 가진 남녀가 등장했다. 가장 떨리는 순간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는 장면을 쓸 때였다. 얼마 가지 않아서 너는 한두 줄 쓰는 것도 쉽지 않다며 포기했다. 결국 내가 너의 몫까지 두 배로 써야 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어느새 나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황홀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너는 감상을 적어두는 식으로 우리의 돌림노트는 계속됐다. 그것은 너와 나 둘만의 비밀이었고 비밀을 공유한 사이답게 우리는 더욱 각별해졌다.

“오늘 우리 집에 놀러 갈래?”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 네가 말했다. 반 아이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너와 친했지만, 그때까지 너의 집에 가본 적은 없었으므로 얘기를 듣고도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의심할 만큼 놀랍고 반가웠다.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그렇게 말하며 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날 나는 수업 시간 내내 들떠 있었다. 너와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마침내 부잣집을 구경하게 됐다는 생각에 설렜다. 아이들과 연예인을 보러 몇 번인가 그 동네에 갔을 때, 나는 늘 담장 안쪽이 궁금했다. 그 안은 아무리 까치발을 들고 깡충깡충 뛰어봐도 들여다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방과 후,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윗동네로 걸어갔다. 중견 탤런트가 살고 있는 집을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너는 걸음을 멈췄다.

“여기야.”

나는 푸른색이 감도는 검은색 대문을 바라봤다. 문 하나가 우리 집 대문을 합쳐놓은 것보다도 컸다. 커다란 돌을 쌓아 올린 담장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나는 고개를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우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번에는 대문 양옆에 서 있는 기둥을 따라 고개를 아래에서 위로 움직였다. 기둥 끝에는 둥근 조명등을 받쳐 든 아기 천사 조각상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훌륭한 예술품이라도 되는 듯 넋을 놓고 바라봤다.

“멋있니?”

너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내 손을 꼭 잡고 돌담을 따라 반 바퀴쯤 돌았다. 네가 걸음을 멈춘 곳은 청동색 쪽문 앞이었다. 평소엔 뒷문으로 드나드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너는 책가방 앞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쪽문에 끼워 넣었다. 철컥.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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