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경 소설 <7화>
너의 집에 가져갈 간식을 만들어주면서 엄마는 종종 너의 부모님이나 집에 관해 묻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유리네 집은 진짜 엄청 넓어. 집이 아니라 꼭 성 같아.”
시내에 진입하자 도로가 제법 혼잡했다. 늘 교통 체증이 심한 구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몇 시간이고 이렇게 도로에 갇혀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초조했다. 옆 차가 함부로 끼어들 때마다 나는 클랙슨을 길게 울려댔다. 남편은 계속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받지 않았다.
“집에 중요한 일이 있나 보구나?”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진동음이 신경 쓰이는지 너는 나를 돌아봤다.
“아냐. 그냥, 안 받아도 되는 전화야.”
너는 뭔가 더 말하려다 말고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남편이랑은 잘 지내니?”
너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꺼낸 얘기였겠지만, 그 순간 나는 네가 내 소설과 나에 관련된 기사를 꼼꼼하게 챙겨보는 건 물론, 사생활까지 몰래 조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네가 내 책을 잘 봤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 너는 주로 내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두 권의 소설집에 실린 작품을 모두 꼼꼼하게 정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오래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문장까지 정확하게 기억했고, 그때 내가 입고 있던 옷이나 서재에 놓여 있던 가구에 대해서까지 세세하게 묘사했다. 어쩐지 등이 서늘해져 나는 열 시트 온도를 한 단계 올렸다.
남편과 별거를 하고 몇 개월이 지났을 때 대학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냥 얼굴이나 보자기에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헤어지기 전에 동창이 불쑥 내 팔을 붙잡았다. 며칠 전에 내 남편을 봤다고, 웬 여자와 함께 있었다고 동창은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별일 없지? 그래도 너, 남편 뒷조사는 꼭 해봐라. 혹시 모르잖니.”
남편과 내가 멀어진 것은 우리 둘의 문제였다. 물론,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별거 후에 남편이 누군가를 만났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저 친구나 직장 동료와 함께 있었던 것뿐인지도 몰랐다. 그때 나는 내가 처한 현실보다 남의 불행을 캐내려는 사람이 더 무서웠다.
“그럼. 잘 지내지.”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구나,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너는 목소리 톤을 높였다.
“참, 내 얘기는 하나도 안 했구나. 난 지금 중국에서 살아. 상해에서.”
아침부터 긴장하고 있던 데다 너와 마주친 후로 더욱 예민해진 나는 그제야 너에게 잘 지냈느냐는 인사말조차 건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그랬듯, 나 역시 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한때는 네가 탤런트로 데뷔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 너는 가난했지만 가난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을 갖고 있었다.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얼굴을. 어른이 된 너의 아름다움은 한층 더 깊어졌고, 때문에 너의 남편은 분명 미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출중한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뒤늦게 아이는 있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없다고 대답했다.
“남편이 그쪽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데, 그래서 결혼식도 여기서 한 번, 상해에서 한 번, 두 번이나 올렸어. S구에는 시댁이 있거든. 한국에 들어오면 늘 거기서 지내. 곧 시아버지 칠순인데, 남편은 바빠서 주말에나 들어올 거고 나 먼저 들어왔어. 이게 다 널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싶네.”
너는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천천히 쓸었다. 우아함이 묻어난 움직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너의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근육이 미세하게 파열되는 기분이었다.
“명선아, 난 말이야, 네 소설을 보면서 너랑 마주치는 상상을 수없이 해왔어. 너와 마주치면 그때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는 그런 상상.”
너는 컵 홀더에서 테이크아웃 잔을 꺼내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너는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긴 손톱으로 종이컵을 긁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할퀴는 것 같아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차는 어느덧 S구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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