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진 소설 <3화>
엄마의 유일한 소원은 다리를 쭉 펴고 누워 지내는 거였다. 엄마는 주로 쪼그려 앉아서 지냈다. 그것은 가난하고 죄가 많은 사람들의 자세이다. 바보는 자세를 바꿀 줄 모른다. 엄마는 내가 엎드려 울 때도 움츠리고 앉은 채로 다가와 나를 달랬다.
아가야, 울지 마.
나는 조금도 위로받지 못했다. 내가 입은 상처를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자주 내 팬티 속을 들여다보았다.
어리지도 않은 게 왜 뻔질나게 우냐.
그래서 나는, 조금도 떳떳하지 못했다. 어리지도 않은 게 울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이 나니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지를 못했다. 나는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것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자세이다. 그들에게는 소원이랄 게 없다. 얼굴을 높이 쳐들면 나를 내려다보느라 더 깊게 수그린 아버지의 고개가 가장 먼저 보였다.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고개를 빳빳이 세운 자세로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마침내 드디어 다 컸네, 라고 처음 인정받은 것은 내가 초경을 시작했을 때였다. 열네 살 되던 해였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겨울이었다. 때맞춰 아버지는 헐값에 중고차를 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태우고 다녔다. 매번 토요일이었다. 나는 항상 뒷좌석에 던져지듯 태워졌다. 맨 처음에는 안 그랬다.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침에 아버지가 나를 불러다가 차 타고 어디 좀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점퍼에 팔을 꿰고 있었다. 엄마가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오리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가야, 정말 갈 거야?
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허리띠를 꽉 졸라매고 있었다. 새끼손가락에 자동차 키를 걸고 허리띠의 버클을 채우는 중이었다.
엄마를 혼자 두고 갈 거야?
엄마의 가랑이가 젖어 있는 게 보였다. 또 소변을 지리고 있었다.
오늘은 안 돼?
엄마가 물었고 나는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마가 내 표정을 따라하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엄마 데리고 가자.
아버지가 발을 들었다. 커다란 발이었다. 발끝에 채일까 봐 놀란 엄마가 벌떡 일어섰다. 후다닥 방문을 열고 나가서 주황색 슬리퍼를 구겨 신었다. 엄마는 몸놀림이 재고 빠르지만 멀리 도망갈 생각을 못 한다. 쪽문을 열면 마당이고 화장실은 마당에 있는데, 문밖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는다. 아버지가 얼른 뒤따라 나가기에 엄마를 잡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엄마를 거들떠보지 않고 재빨리 부엌을 지나 쪽문을 열어 마당에 섰다. 부엌 쪽을 건너보며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엄마는 싱크대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오들오들 떨었다. 주먹 쥔 두 손으로 싹싹 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쳐다보며 웃었다.
이것 봐. 아직 제대로 빌 줄도 모르지. 내가 뭐랬어. 손바닥 펴고 빌라고 했지?
나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여 엄마와 눈을 맞추려 애를 썼다. 엄마는 움켜쥔 열 손가락을 하나씩 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저러니 바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잘못했어요. 엄마가 더듬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벌써 대문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엄마는 겨우 세 번째 손가락을 곧게 펴는 중이었다. 나는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으며 엄마에게 당부했다.
엄마, 부엌에서 그냥 오줌 눠. 화장실까지 못 가겠으면 그냥 부엌에서 누라고.
엄마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주인집의 커다란 창문에 기다랗게 드리워진 커튼이 홱 닫혔다.
주인집에는 60대 부부가 살았다. 서른 살을 훌쩍 넘긴 바보 아들과 함께 살았다. 아들은 다리를 절었다. 아버지는 주인집 부부에게 월세를 건넬 때마다 우스갯소리를 했다.
월세 대신 우리 집 딸년을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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