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진 소설 <5화>
아버지의 중고차가 탱크라고 상상했다. 아버지와 나는 막역한 전우처럼 적진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누군가 낙오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탱크를 후진할 수가 없었다. 후진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후진은 후퇴였다. 탱크는 쉬지 않고 나아갔다. 우리는 모자란 한 명의 병사 때문에 죽을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어쩌면 뒤에 남겨진 병사가 낙오를 자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가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할 정당한 이유도 몰랐다. 그런 이유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억울했지만 방향을 바꾸자거나 그만 멈춰 서자거나 도망치자는 말을 입 밖으로 내서도 안 됐다. 이미 우리는 적의 사정권 안에 들어섰고 그것은 삶이 더 이상 우리의 의지대로 제어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핸들과 기어는 그럴싸한 장식에 불과했다. 운전수에게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믿음 따윈 버려야 좋았다. 그래야 죽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한 일들이었고 그나마 상상은 즐길 만한 점이라도 있었다. 재수가 있건 없건 상상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모든 게 인과응보라는 순리를 따라 해결되었으니까.
차는 실내 낚시터에 당도했다. 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어두운 주차장의 나무 그늘 아래로 사라졌다. 다른 남자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나는 오래 맞았다. 뒷좌석에 온통 피 칠을 했다. 남자가 차에서 내리자 아버지가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세었다. 나는 뒷좌석에 다리를 벌린 채 널브러져 있으면서도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지폐의 개수를 함께 세었다. 이십만 원이었다.
후진을 하지 않고도 탱크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최종 적진은 마치 집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동안 방바닥에 누워 지냈다. 죽은 할아버지가 딱히 처박을 만한 낯선 것을 찾지 못해 누런 벽에 머리를 찧고 찧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하면 할아버지는 금세 방향을 틀어 내게로 돌진했다. 인정머리라곤 조금도 없지. 나는 입술을 씹으며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저것이 내 할아버지라니. 몸뚱이가 없어 어디 팔 데도 없고 두들겨 팰 수도 없는 저것이 아버지의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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