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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16 09:32 수정 : 2015.02.16 09:32

황현진 소설 <6화>



매미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추워라, 추워라, 중얼거렸다. 하나뿐인 작은 창을 온종일 열어두어도 온도계는 35도를 훌쩍 넘겼다. 여름이니까, 당연한 무더위였다. 도무지 왜 자꾸 춥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불을 덮으려거나 창문을 닫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맨날 벽에 기대어 앉아 같은 말만 반복했다. 추워라, 추워라, 추워 죽겠다, 앓는 소리를 했다. 엄마는 바람을 피하려고 선풍기의 날개를 내 쪽으로 고정시켰다. 나도 춥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필이면 방학이었다.

엄마의 중얼거림을 피할 길이 없었다. 엄마가 추워라, 추워라, 하면 추워? 추워? 물어보았다. 엄마는 긴바지를 꺼내 입으라고 닦달을 해도 그러지 않았다. 이불 속에 누워 있으라고 해도 밤이 되기 전까지 앉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추워라. 추워라. 추워 죽겠다. 그 소리는 아예 벽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엄마, 그러다 재수 없어져.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나도 툭하면 재수 없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다. 엄마는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엄마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아버지의 말처럼 엄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재수 없이 사나 보다 싶기도 했다. 아버지라고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엄마가 추워라, 추워라, 읊조리면 저것이 바람이 들어서 저 모양이라고 이죽거렸다. 모든 게 치마 입은 것들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나나 엄마에게 맨날 바지를 못 입게 해서 믿을 말은 못 되었다. 나는 매일 교복만 입고 다녔다. 치마는 짧았고 인기가 많았고 편리했다. 가끔 치마 속에 바람이 고일 때도, 더러 있었다. 허벅지 안쪽이 얼어붙어버린 것만 같을 때도, 종종 있었다.

할머니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 말은 틀렸다. 아무도 할머니를 찾지 않았으니까. 할머니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를 돌려보내고 싶었던 누군가가 있었으나 할머니는 돌려보내기에 아주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차를 몰았다.

길은 멀었다. 고속도로는 처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버지는 평소보다 차를 빨리 몰았다. 나는 늘 그랬듯이 뒷좌석에 앉았다. 엄마는 집에 내버려두었다. 할아버지는 요란하게 펄럭였지만 선풍기의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는 내가 앉아 있던 의자의 등받이에 철썩 들러붙은 채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족히 네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휴게소마다 화장실에 들렀다. 나 때문이었다. 너무, 자주, 오줌이 마려웠다. 참을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참으면 팬티에 오줌을 쌌다. 오줌을 누고 팬티를 입다가도 오줌이 마려웠다. 아버지는 화를 냈다. 욕을 했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쥐어박기도 했다. 휴게소의 입간판이 나타날 때마다 작은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그만 좀 싸라. 이년아.

아버지가 눈을 부라리며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나는 거기가 가려웠다. 미칠 듯이 가려운데 아버지 앞에서 긁어도 될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라고 해도 어쩐지 긁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변기에 앉아 오줌을 누는 동안 사타구니를 벅벅 긁었다. 시원하지 않았다. 일어서서 변기의 물을 내리려고 보니 변기 안의 물이 벌겠다. 오줌이 아니라 피를 싸고 있었다. 망할 대로 망했다 싶어져서 눈앞이 아찔했다.

할머니가 있다는 도시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엔 휴게소의 화장실을 아홉 번이나 다녀온 뒤였다. 손톱 아래 핏물이 배었고 팬티에도 붉은 물이 들었다. 증상에 비해 아프지는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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