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진 소설 <7화>
항구가 있는 도시였다. 기다란 굴뚝이 곳곳에 서 있었다. 희고 짙은 연기가 굴뚝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버지는 이상한 말씨를 사람들에게 여러 번 길을 물어 겨우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허름했고 외진 곳에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은 대개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카디건이나 점퍼를 껴입고 병원 그늘에 나란히 쭈그려 앉아 출입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덥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10년 전에도, 10년 후에도 그러고 있을 사람들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들이 한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추워라, 추워라, 추워 죽겠네. 어쩌면 외딴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요양 중인 환자들의 진짜 정체는 겨울일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말처럼 찬바람이 혹독하게 들어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저절로 엄마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접수창구의 여직원에게 할머니의 이름을 댔다. 여직원이 아버지와 나를 흘깃 살펴보았다. 나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바지를 입고 있었고 왼쪽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었다. 일부러 명찰 쪽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녀가 아버지와 나에게 4층으로 가라고 했다. 계단 바로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허리가 잔뜩 굽은 노파가 엘리베이터 옆에 서서 매미 소리를 흉내 냈다. 맴. 맴. 맴. 매애앰. 그러고 보니 병원의 뒤편은 숲인데도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재수 없게.
아버지는 우그러진 담뱃갑을 한 손에 쥔 채 계단을 올랐다. 나는 짧은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사타구니 언저리가 무지근했다. 계단을 다 오르자마자 직원의 안내를 받아 할머니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대체로 몸은 건강하신 편인데 정신이 온전치 않으세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인데 오늘은 보호자가 오신다고 해서 일단 자유롭게 계시도록 해놓긴 했는데…….
가슴팍에 차트를 끌어안은 간호사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명찰을 가리려고 보여주지도 않을 차트를 들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나는 손톱에 밴 핏물을 빨아 먹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맴, 맴, 맴. 나도 모르게 아래층에서 본 할머니를 따라 하고 있었다.
병실 문이 열렸다. 1인용 병실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가 욕을 했다.
시팔, 저게 뭐야.
간호사가 차트를 침대 위에 던지고 창가에 붙어 서 있는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할머니는 키가 작고 통통했다. 목이 늘어진 하얀 반팔 티 아래로 커다란 가슴이 출렁였다. 배 아래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사타구니에는 털이 없었다. 허벅지는 가늘고 무릎은 겨우 다리에 붙어 있는 것처럼 툭 튀어나와 흔들거렸다. 머리칼은 검었으나 숱이 없었다. 붉은 립스틱이 얼굴 전체에 번져 있었다. 입술이 얼굴 같았다.
커다란 입술이 히죽거리며 아버지와 나를 반겼다. 벽에도 온통 붉은 칠이었다. 입술 자국이 벽에 가득했다. 간호사가 할머니를 잡아끌어 이불로 몸을 감쌌다. 할머니는 순순히 그녀에게 몸을 내맡기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우리말 같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몸은 건강하세요.
간호사가 헐떡이며 말했다. 침대에 할머니를 눕히고 한 팔로 할머니의 배를 꽉 눌렀다. 커다랗고 붉은 입술 같은 게 웃었다. 할머니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했다. 천장은 깨끗했다. 하얀 천장에 대고 붉은 입술 같은 할머니가 드러누운 채 성호를 그었다.
뭐래요?
아버지의 뒤에 숨어 서서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내려다보며 쏘아붙였다.
그 신부 새끼 이름이지, 뭐긴 뭐야.
아버지는 더 머물지 않고 병원을 나섰다. 간호사가 뒤따라 나와 만류했지만 들은 체도 안 했다. 그저 이렇게만 대답하고 낡은 중고차의 시동을 걸었다.
다 봤으니 이제 됐다니까.
차가 병원을 빠져나오자마자 뭘 다 봤다는 거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아까 그 입술보다 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죽을지.
추웠다. 아버지가 핸들을 꺾자마자 내 몸이 일그러졌다. 맴맴맴. 맴맴맴. 속으로 매미 소리만 쉼 없이 따라 했다. 매미는 왜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죽고 마는지를 생각하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화장실이요.
돌아오는 길에는 휴게소를 열한 번 들렀다. 결국 마지막 휴게소의 화장실에서 팬티를 버렸다. 너무 축축해져서 더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의 얼굴이 푸르뎅뎅했다. 아버지가 어딜 쏘다닌 거냐며 이미 울상이 된 엄마를 몰아세웠다. 옷을 벗겨보니 엄마의 온몸이 퍼렜다. 나는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아버지는 엄마를 발가벗겨 세워두었다. 나는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의 날개에 대고 웅얼거렸다.
엄마가 이러니까 아무도 엄마 말을 안 듣잖아.
가느다란 목소리가 등 뒤에서 계속 들려왔다.
추워요. 잘못했어요. 추워 죽겠어. 다신 안 그럴게요.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매미가 한철 그악스럽게 우는 이유는 발정이 나서라고 했다. 그러다 곧 죽는다고 배웠다. 인과응보인가 보다 했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