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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진 소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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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진 소설 <8화>
절름발이는 교회에 다녔다. 유일한 외출이었다. 거의 매일 집구석에 틀어박혀 창밖만 바라보았다. 절름발이 주제에 앉아 있을 만도 한데 삐뚜름하게 서서 담배만 피워댔다. 집주인 부부는 그를 맘껏 내버려두었다. 내가 절름발이의 부모라 해도 그럴 것 같았다. 마당 귀퉁이에 있는 화장실에 달려가는 내게 그는 가끔 손을 흔들었다. 나는 절름발이가 나를 비웃고 있다고 여겼다. 더러운 창에 가려져서 표정을 알 수 없지만 그가 서 있는 자세만 보아서는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결석했다. 정말로 배가 아프긴 했다. 새벽부터 내내 마당을 오락가락했다. 주인집의 현관은 높았다. 낮은 계단 열두 개를 밟고 올라가야 그들의 집이었다. 우리 집은 계단 아래에 있었다.
얼마 전에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아서 계단은 미끄러웠다. 계단은 군데군데 부서져 있었다. 발로 차면 가장자리가 툭툭 떨어져나갈 정도였다.
오른쪽이 유난히 더 망가져 있었다. 4월에 눈이 내리다니. 내가 놀라워하자 아버지는 옛날엔 흔해빠진 일이었다며 시큰둥해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절름발이가 계단을 내려오다가 나와 마주쳤다. 교회에 가는 길이었다. 가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가방끈을 만지며 알은체를 했다. 오늘따라 아주 자신감이 넘치시네, 내심 비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우리 집 보일러를 켜면 너희 집도 따뜻하지?
절름발이가 계단 중간에 서서 물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 따지고 싶었다.
어쩌라는 거야?
나는 팔짱을 끼고 쏘아붙였다. 이 새끼가 내게 집주인 행세를 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이 새끼도 자동차의 뒷좌석에 타고 싶어서 이러나, 짜증이 났다. 뭐라도 팔아야 살 거 아니냐. 아버지는 툭하면 뒷좌석에 앉아 교복 치마의 먼지를 터는 내게 말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교복은 바뀌었지만 치마 길이는 똑같았다.
우리 집은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켜.
자랑인 것 같았으나 여름마다 방 안이 찜통인 이유가 주인집 때문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안 춥니?
안 춥다.
교회 갈래?
싫은데.
거기 가면 따뜻해.
어느새 할아버지가 다가와 절름발이의 목덜미를 가격하고 있었다. 절름발이의 몸이 점점 더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갔다.
그러다 자빠지겠다.
할아버지에게 한 소리였는데 절름발이가 얼른 자세를 고쳤다. 두 손으로 왼쪽 다리를 붙잡고 서서 씩 웃어 보였다. 나는 그의 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일부러 왼쪽 다리만 보았다. 흰 운동화를 신은 발은 누군가 억지로 발목을 비틀어놓은 듯했다. 밑창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새것처럼 깨끗했다. 깊게 파인 홈마다 모래 한 알 끼어 있지 않았다.
교회, 왜 가는데?
궁금했다. 걷는 일이 가장 불편한 사람이면서 왜 주일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교회에 가는지, 알고 싶었다.
오늘이 부활절이거든.
아니, 왜 하나님을 믿는 거냐고?
절름발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서.
무슨 뜻?
나를 절름발이로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
절름발이의 얼굴이 들떠 보였다. 나는 계획이라는 말에 홀렸다. 인과응보의 다른 말처럼 들렸다. 절름발이가 앞장섰다. 이마를 두 손으로 가리고 발끝만 쳐다보면서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할아버지가 내 허벅지와 허리에 정수리를 부딪치며 따라왔다. 이젠 할아버지가 아무리 성난 기세로 달려들어도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충격은 아무렇지 않았다. 진짜로 그저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에 불과할 때도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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