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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5 09:35 수정 : 2015.02.25 09:35

황현진 소설 <10화>



식탁

할머니의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어떻게 죽을지는 알았지만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어서 조바심을 냈다. 뜻밖에도 비보의 주인공은 작은아버지였다. 그는 사형제의 막내였다. 본 지 오래되어서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이었다. 엄마와 나는 나란히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연신 그 새끼를 운운하며 쉼 없이 떠들어댔다.

작은아버지는 휴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혼자 살았다. 아주 높은 산의 중턱에서 벌을 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작은어머니는 가까운 도시에서 두 남매를 키우며 따로 지냈다. 남매의 교육을 위한다는 명목을 내세우긴 했지만 작은아버지랑 한집에서 살기 싫은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빤한 일이다.

작은아버지는 주정뱅이였다. 그는 큰딸의 부츠에 소주병을 숨겨놓고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이면 신발장을 뒤졌다. 식구들의 낡은 신발들 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병째 술을 마셨다. 큰딸이 중학생 되던 해, 작은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살 수는 없어요, 라고 말문을 뗐다. 아버지는 그 새끼는 진즉부터 내 동생이 아니었다고, 나한테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 알아서 잘 살아보시라고 딱 잘라 말했다.

비보는 새벽에 전해졌다.

죽었어요.

작은어머니의 첫마디였다. 아버지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어디서요, 라고 물었다.

식탁에서요.

작은어머니의 대답은 간결했다.

식탁 밑에서요.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은 쪽은 나였다. 통화를 끝낸 아버지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투로, 건성으로 대답했다.

술이지.

나도 술을 마셔본 적 있다. 하굣길에 친구 두 명과 함께 놀이터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한 친구가 가방에서 먹다 남은 소주병을 꺼냈다. 나와 다른 친구는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친구가 내게 먼저 술병을 건네주었다. 얼른 한 모금을 들이켰다. 온몸이 홧홧하게 불타올랐다. 입을 한껏 벌리고 숨을 크게 여러 번 내쉬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손부채질을 하며 겨우 열기를 식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내내 입을 벌리고 걸었다.

집 앞 슈퍼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남자들이 뒷좌석에 흘리고 간 동전들을 주워 모은 돈으로 산 거였다. 엄마가 춥다고 할 때마다 먹일 작정이었다. 검은 봉지에 둘둘 말아 책가방에 쑤셔 넣었다. 어쩐지 책가방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집 안에 마땅히 숨길 만한 곳을 찾지 못해 작은아버지처럼 신발장에 넣어두었다. 부츠가 없어서 아버지의 고무장화에 숨겼다. 몇 년째 신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리 날이 무더워져도 춥다고 하지 않았다. 술은 오로지 내 몫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마다 자동차 뒷좌석에 오르기 전에 한 모금씩 삼켰다. 한 달에 한 병씩 술을 샀다. 취하지도 않았고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속이 뜨거워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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