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진 소설 <11화>
장례식은 도시의 이름을 딴 시립 병원에서 치러졌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염습이 시작되었다. 딴에는 아버지가 형제 중 맏이라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아버지의 친척과 형제들이 유리 벽 앞에 나란히 서서 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작은아버지의 시신은 좁고 기다란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죽을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였다. 하얀 반팔 티셔츠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반바지 차림이었다. 티셔츠는 검붉은 핏자국 범벅이었다.
옷이 왜 저렇습니까?
아버지의 사촌 형제라는 사람이 작은어머니에게 물었다.
피를 토했어요. 간이 다 녹아버렸대요.
나는 발끝을 세우고 고개를 요리조리 비틀었다. 키 큰 어른들 틈새에 억지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작은아버지는 할머니와 아주 닮은 얼굴을 가졌다. 할머니보다 훨씬 검고 말랐지만 이목구비나 체형이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데가 많았다. 마스크를 쓰고 흰 장갑을 낀 직원이 가위로 셔츠를 갈랐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같았다. 나도 모르게 앞에 서 있는 어른의 어깨를 밀었다. 어른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더욱 유리 벽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아버지가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나가 있어.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싫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엄마 옆에 있어.
엄마는 혼자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며 무리에서 떨어지는 엄마를 빈소의 구석에 데려다 놓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엄마는 버둥거리며 일어서려 했다. 아버지가 엄마의 몸을 꽉 붙들고 억지로 눕혀서는 무섭게 명령했다. 가만히 누워 있어. 지켜보던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하긴 누군가는 영정을 지키고 있는 게 맞는다며 비뚜름하게 서서 저들끼리 중얼거렸다.
나는 쫓겨나다시피 염습실 문밖으로 떠밀렸다. 죽음도 교육이라고, 제 자식들과 나를 염습실 안으로 데려가던 작은어머니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못 본 체했다. 돌아와보니 엄마는 모로 누워 있었다. 엄마의 얼굴을 마주 보고 누웠다. 무릎이 맞닿았다. 온기가 돌지 않는 방바닥에서 스며 나온 냉기가 금세 허리께 전해졌다.
엄마, 안 추워?
자는 엄마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꼭 죽은 척하는 사람 같았다. 엄마의 감은 눈 밑에 눈물이 맺혀 번질거렸다.
엄마, 울어? 왜 울어?
엄마는 뜸을 들이다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가야, 무서워.
뭐가 무서워?
식탁이 무서워.
진짜로 엄마는 바보였다.
괜찮아. 우리 집엔 식탁이 없잖아.
아니야. 우리 집에 식탁 있어.
엄마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고 누워 지폐를 세듯 흐르는 시간을 쟀다. 향냄새가 점점 진해졌다. 귓가에서 재가 툭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귀를 벅벅 긁으며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귀 기울여 들었다. 염에 참관하러 갔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왔을 때, 귓속말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어?
엄마는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말했다.
몰라.
내가 뭐라 대꾸하기 전에 엄마가 또 입을 열었다.
모르는 이야기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라도 제대로 기억할 리가 없는, 심지어 자기 자신에 관한 기억조차 깡그리 잊고 마는 바보가 바로 내 엄마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