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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7 09:36 수정 : 2015.02.27 09:36

황현진 소설 <12화>



어른

할아버지를 발견한 것은 화장터에서였다. 장의 버스를 타고 화장터의 주차장에 당도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늘 높이 솟구친 거대한 굴뚝이었다. 굴뚝 아랫부분에 할아버지가 있었다. 어떻게 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바람이 데려왔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아니면 아버지와 내가 강력하게 그를 불러들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쭈뼛거리며 어른들의 뒤를 따라 화장장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작은아버지의 어린 자식들이 앞장섰다. 작은어머니는 검은 상복 때문에 유난히 더워했다.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쳐냈다.

간소한 영결식이 이어졌다. 차례대로 절을 하고 나서 관 주위에 모두가 둘러서서 묵념을 했다. 간이 녹아 없어진 시체가 그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했다. 화장로의 좁은 문이 열렸다. 안쪽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쿰쿰한 바람이 새어 나왔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머리 위로 서늘한 바람이 일었다. 나도 모르게 정수리 쪽에 손이 갔다.

직원들이 관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허리 위로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지나갔다. 할아버지였다. 화장로 입구로 할아버지의 영혼이 쑥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붙잡으려 했다기보다는 반사적인 몸짓에 가까웠다. 놀란 어른들이 내 몸 여기저기를 잡아챘다. 뒤로 나동그라지면서도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화장로의 입구가 닫혔다. 버튼에 빨간 불이 켜졌다. 불이 댕겨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어른들이 화장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버지는 굴뚝 아래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물었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흙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동그라미를 그려댔다. 굴뚝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람도 잠잠했다. 바람마저도 죽어버린 것 같았다. 연기는 하늘 높이 수직으로 솟구치다가 흐리마리 사라졌다. 그것은 작은아버지의 시신을 태우는 불길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영혼이 남김없이 타오르는 연기였다. 나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연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오래 쳐다보았다. 연기가 사그라질 때까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뒷목을 붙잡고 서서 기어이 다 지켜보았다. 불현듯 할아버지야말로 내게 너무 낯선 영혼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돌아오자 토요일이었다. 엄마를 방에 가둬두다시피 하고 아버지는 나를 뒷좌석에 태웠다. 나는 화가 났다. 교복에 아직도 향냄새와 바람결에 묻어온 재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실내 낚시터로 몰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나무 그늘이 깊었다. 아버지는 담뱃갑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뒷문이 열리고 남자가 올라탔다. 문이 닫혔고 남자는 나를 보자마자 웃었지만 오래 웃어주지는 않았다. 나는 속으로 시간을 쟀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남은 시간을 헤아려보았다. 넉 달만 있으면 스무 살이었다. 엄마는 나를 아가야, 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할까. 스무 살이 지나면 내가 팔 수 있고 팔아야 할 무엇이 남아 있을까.

남자가 입을 굳게 다문 채 차에서 내렸다. 나는 하던 생각을 이어갔다. 남자는 뒷문을 닫지 않고 서서 흐트러진 매무새를 정돈했다.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치마를 끌어 내렸다. 남자가 지갑을 꺼냈다. 아버지에게 지폐를 건넸다. 아버지가 소리 내어 돈을 셌다.

모자라잖아.

아버지가 말했다.

깎아줘요.

너 미쳤어?

아버지가 대뜸 시비부터 걸었다. 남자는 침을 뱉었다.

더 내놔.

어리지도 않던데.

남자가 나를 흘깃 쳐다보며 비아냥거렸다.

네가 보기엔 쟤가 어른으로 보이냐?

아버지가 나를 손가락질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도 궁금했다. 내가 아직도 어른이 아닌지.

절대로 못 깎아. 싸게는 못 준다고.

성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남자가 시팔, 욕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아버지는 남자의 손에서 뺏다시피 지폐를 가져갔다. 남자의 입에서 계속 욕이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앞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고는 담배를 꺼냈다. 시팔. 아버지도 욕을 했다. 나도 속으로 따라 욕을 했다. 시팔.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기도 전에 차가 크게 뒤흔들렸다.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나는 뒷좌석 아래로 고꾸라졌다. 얼마 되지 않는 높이였지만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밑으로, 밑으로 떨어졌다. 좀처럼 바닥에 몸이 닿지 않았다. 차는 끊임없이 앞뒤로 흔들렸다. 눈을 꾹 감고 버텼다. 눈을 감아야만 간신히 비명이나마 지를 수 있었다. 온몸을 둥그렇게 말고 잠자코 기다렸다. 자동차의 흔들림이 멈추고 내 몸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 올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는 것뿐이었다. 누구에게 빌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적어도 아버지는 아니었다.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이었다.




(이상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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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황현진의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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