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2.22 21:39 수정 : 2015.02.23 10:39

[박근혜 정부 2년 진단] ① 국정운영
문고리 권력 키우는 ‘서면 통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대면보고보다 그냥 전화 한 통으로 빨리 하는 것이 더 편리할 때가 있어요. 대면보고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그걸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지만… (장관들을 뒤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지난 1월12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보고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웃었다. 장관들을 향해 ‘대면보고가 굳이 필요하냐’고 묻는 이 장면은, 지난 2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왜 ‘불통’ 또는 ‘일방통행’이라고 거센 비판을 받아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소통’은 위아래로 오가는 ‘보고’만을 의미할 뿐, 의견이 좌우로 오가는 ‘토론’은 없었던 것이다.

근무지가 떨어져 있는 장관들만 그런 게 아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함께 근무하는 주요 참모들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청와대 수석들은 회의 때나 박 대통령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수석은 박 대통령과 독대 한번 못 해보고 청와대를 떠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박 대통령은 ‘직접 소통’에 인색하다.

장관·참모, 회의 때나 대통령 대면
독대 한번 못하고 떠난 수석도
쌍방향 아닌 선택적 일방통행 소통
세월호 때 ‘대통령의 7시간’ 논란

3인방 안 거치곤 닿을 방법 없어
결국엔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
“교체하라” 여론 들끓어도 모르쇠

대면보고를 대신하는 건 서면보고다. 박 대통령의 ‘보고서 사랑’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유명했다. 서울 삼성동 자택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던 박 대통령은 집에 있는 팩스로 측근들의 보고를 받았다.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 때 언급한 ‘전화 한 통’은, 보고서를 받아 보고 궁금한 점이 있거나 지시할 일이 생긴 뒤에야 비로소 이뤄지는 ‘소통’이다. 박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대통령이 일단 궁금한 게 생기면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수시로 전화로 자세히 물어본다. 그러다가 관심사에서 멀어지면 오는 전화가 딱 끊긴다. 그 때문에 어떤 이들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오해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전화’는 쌍방향 소통이 아닌, 박 대통령의 선택에 따른 일방통행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나 정당 대표였을 때는 ‘서면보고’로 상징되는 이런 소통 방식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된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일 불거진 ‘박 대통령의 7시간’ 논란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21회(국가안보실 10회, 비서실 11회) 보고를 받았지만 모두 서면과 전화를 통해 이뤄졌을 뿐 대면보고는 없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첫 대통령 보고는 침몰 속보가 나온 지 40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해 현황 파악과 대책 마련을 위해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 순간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보고서에 매달린 것이다. 참사 발생 8시간이 훌쩍 넘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박 대통령이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가뜩이나 폐쇄적인 청와대의 구조에, 보고서를 선호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까지 더해진 결과가 바로 ‘문고리 권력’의 비대화다. 공식적으로 보고서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정호성 부속비서관을 비롯해, 국회의원 시절부터 박 대통령을 보좌해온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을 거치지 않고선 제아무리 ‘측근’이라도 박 대통령과 연락이 닿을 방법이 없다는 게 여권의 ‘정설’이다. 당대표를 지내던 때부터 그랬고, 대통령이 된 뒤엔 더 심해졌다. 지금껏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왕실장’, ‘기춘대원군’이란 별칭으로 현 정부의 2인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소통 방식의 탓이 크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서면보고’를 고집하며 다른 의견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서를 전달할 수 있는 위치의 비서실장과 3인방의 위세가 막강해진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서면보고’는 지난 2년 정권을 괴롭혔던 ‘불통’과 ‘비선’, ‘수첩’과 ‘밀실’ 등의 단어와 같은 의미이고 ‘박근혜 리더십’의 요체라는 얘기다.

지난해 말 불거진 ‘정윤회씨 국정 개입’ 문건 파문 이후 김 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교체하라는 여론이 커진 것도 사실은 박 대통령의 이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이런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의혹을 이유로 내치면 누가 내 옆에서 일할 수 있겠느냐”며 3인방을 감쌌고, 김 실장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며 교체를 거듭 미루면서 명예로운 퇴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비박근혜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인사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측근들의 교체를 요구한 것인데, 박 대통령은 ‘측근들이 비리와 사심이 없다’며 본질을 피해갔다”며 “박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 싫다는 거고, 지금껏 유지했던 국정운영 방식도 바꿀 뜻이 없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짚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근혜 정부 2년 진단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