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4 19:08
수정 : 2015.02.25 13:36
[속보이는 스포츠-국내1호 아이스하키 장비 매니저 가방]
30㎏ 샤프닝머신·32㎏ 리베팅머신…
스틱 절단기에 장갑 재봉틀까지
장비 무게 1톤…운임만 수백만원
“날 속에 선수의 마음이 있죠.” 13년간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단과 국가대표팀의 장비 매니저를 맡아온 천진영씨는 이 직종 국내 1호다. 가방 속에는 높이가 다른 리벳부터 30㎏의 샤프닝머신까지 수백가지의 부품이 가득하다. 하나라도 빠뜨리면 비상사태 때 대처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2㎜ 폭의 스케이트 날 양쪽에 각을 만들어 주는 샤프닝머신이다. “24명 선수들마다 홈을 파는 선호가 다르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요구하는 게 다르다.” 딱 찍어서 선 뒤 민첩하게 반대쪽으로도 움직여야 하는 골리는 깊게 파는 편이고, 속도가 필요한 공격수들은 조금 얇게 판다. 홈의 깊이는 3/8, 1/2, 5/8, 3/4인치 차례인데, 많이 팔수록 제동성은 좋지만 힘이 든다. 날을 갈 때는 연마기도 좋아야 하지만 손의 감각이 절대적이다. “수비수는 얼음판에 닿는 스케이트 날 부분이 7~9㎝이고, 공격수는 5㎝로 짧다. 여기에 날의 전 부분에서 기울어짐이 없이 평형을 맞춰야 한다.” 워낙 민감한 게 날이어서 라커룸에서 링크까지 가는 통로는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모래라도 밟으면 경기력에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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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영 한라 아이스하키 장비 매니저가 24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32㎏짜리 리베팅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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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날과 날을 지탱해주는 홀더, 부츠로 구성된 스케이트화를 손보기 위해서 32㎏의 리베팅머신도 필수다. 부츠 앞쪽 바닥에는 짧은 리벳을 박고 뒤쪽으로 갈수록 큰 것을 끼운다. 자칫 치수를 잘못 맞추면 너덜너덜해진다. 부츠의 끈과 구멍도 수시로 손상을 입기 때문에 리벳 작업이 많다. 선수들이 쓰는 스틱도 신장에 맞춰서 자르거나 늘리기 위해서 목재 절단기를 라커룸 옆 장비실에 설치해놨다. “퍽을 잡거나 치는 스틱의 날은 휜 각도에 따라 1~21번까지 제품이 다른데 그런 점까지 고려해 스틱을 조정해준다.” 헬멧은 크게 손볼 것은 없지만 앞에 씌우는 고글을 탈·부착하고 때로는 강하게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장비 매니저의 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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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날의 홈을 팔 때는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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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동호인들은 새로운 장비를 좋아하지만 프로 선수들은 다르다. “선수들은 쓰던 물품이 낡아도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갑이 튿어지면 재봉틀로 박아주고, 복숭아뼈가 아프다면 부츠의 안쪽 부분을 온열기로 가열한 뒤 깊게 눌러 공간을 만들어준다. 외국의 경우 2~3인의 보조 매니저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천 매니저 혼자 다 해야 한다. 원정 때는 여분의 날과 홀더, 스틱 등을 챙겨야 하는데 선수단 장비 무게만 총 1t이 넘고, 수하물 한도 초과로 인한 왕복항공료 부담도 수백만원에 이른다. 수시로 얼음에 젖는 부츠를 말리기 위해 여러 개의 헤어드라이어를 직접 개조해서 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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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등 선수들의 소모품은 재봉틀로 꿰메어주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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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매니저는 경기 때 감독과 함께 선수단 벤치에 앉는다. 선수들의 스케이팅 상태를 확인하고 즉시 날을 바꿔줘야 한다. 라커룸 등에서 선수들과 가장 많이 접촉해 감독보다 선수들을 더 잘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감독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핀란드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장비 매니저 캠프에도 국내 최초로 참가해 3주간 교육을 받는 등 국제 감각도 높이고 있다. 천진영 매니저는 “장비를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구단, 감독, 트레이너, 팀 닥터, 심지어 작전까지 포괄적인 관계 속에서 내 역할을 찾고 있다”고 했다.
글·사진 안양/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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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벳과 각종 플라스틱 고리 등 부품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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