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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15 19:48 수정 : 2015.04.16 10:21

그림 이부록 작가

[매거진 esc] 김연수의 ‘소년이로다’
벚꽃 만발하면 떠오르는 외젠 뷔르낭의 그림 ‘부활 아침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빛이 찾아오는 것, 어쩌면 그게 부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내가 자란 고향의 풍토 때문이다. 만약 내가 서귀포나 청진에 살았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으리라. 삼월에는 초하루의 날씨와 그믐의 날씨가 서로 다른데, 이는 춘분이 지나면 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달이 한 번 차오르고 나면 부활절이다. 그래서 부활절은 삼월 하순에서 사월 하순까지 걸쳐 있는데, 내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늦은 아침 잠에서 깨었다가 동네 벚나무들이 모두 꽃을 피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요일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동네가 온통 벚꽃의 환한 빛이라는 게 어린 시절, 내 고향에서 맞는 부활절 아침의 느낌이었다.

덕분에 나는 벚꽃을 볼 때마다 부활 이야기를 떠올린다. 산상수훈만큼이나 나는 부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외젠 뷔르낭의 그림 <부활 아침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 속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것은 요한복음 제20장이다. 예수가 죽은 뒤,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베드로에게 달려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놀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까지 달려갔는데, 그림은 이 두 사람이 달려가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성경에는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고 나온다.

뷔르낭의 그림을 보면, 확실히 요한 쪽이 베드로보다 반 걸음 정도 빠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둘은 잠을 설친 듯하지만,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제대로 잤을지는 의문이다. 그즈음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처형되기 전부터 예수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일어서리라는 예언을 남겼고, 그 때문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를 사기꾼으로 지칭하며 그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무덤을 지켜달라고 청원하기까지 했다. 이에 빌라도가 시큰둥하자, 청원한 사람들은 스스로 경비병들을 세워서 무덤을 지켰다.

그에 비하면, 제자들은 시체를 훔칠 생각까지는 하지도 못했다. 그러기에는 정신적 공황이 너무 컸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소”라던 베드로의 말을 고려하면, 이제는 모든 게 끝났으니까 다들 원래의 생업으로 돌아갈 마음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제자들의 심정이 과연 어땠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피에타를 찾아보면 된다.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내 주변에는 피에타가 흔했다. 성당에는 그림도 걸려 있었고, 친척 집의 장식장 속에는 작은 조각상도 있었다.

절망 속에서 예수를 알아본다는 건
빛을 알아본다는 뜻이고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뜻인지 불현듯 깨닫게 된 것은 마흔 살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스페인을 여행 중이었는데, 어느 성당에 들어갔다가 벽에 걸린 피에타 그림을 보게 됐다. 유명한 화가의 걸작 같은 게 아니라 그저 구도만 같은, 김천 평화동 성당에 걸려 있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평범한 그림이었다. 별 기대 없이 죽은 아들을 안은 성모의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그림 속 두 눈이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그 순간, 아들이 확실히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엄마의 공포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죽지만 않았어도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빌라도든 사제들이든 용서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죽은 다음에야 모든 게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의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의 절망을 보여주는 또다른 일화가 나온다. 요한과 베드로가 무덤으로 달려가던 그날, 제자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근처의 엠마오라는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의 예루살렘 탈출은 예수가 죽고 난 뒤, 제자 공동체가 급격히 와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의 억울한 죽음과 잔인한 세상에 한없이 절망했기에 예루살렘을 빠져나간 것이리라. 그때 한 사람이 그들과 함께 걷고 있다고 누가복음은 말한다. 부활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러나 그들은 아직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그 사람은 누구이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왜 그가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에 대해서 알려면 뷔르낭의 그림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하얀 옷을 입은 요한은 두 손을 모으고 있고, 검은 옷을 입은 베드로는 심장에 오른손을 갖다 댔다. 요한의 손은 인간의 슬픔을, 베드로의 손은 인간의 근심을 나타낸다. 슬픔과 근심은 내의처럼 언제나 사람의 삶에 착 달라붙어 있으나, 지금 그들에게 닥친 슬픔과 근심에 비할 만한 게 또 있을까. 이틀 전, 예수가 비참하게 죽는 것을 목격한 그들은 스승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뒤이은 비보에 놀라 달려가는 중이니.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은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예수가 다시 살아난 것 같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듣고 달려가는 이 순간에도, 그날 저녁 엠마오로 가던 길에 예수와 동행한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말했을 때도 믿지 않았다. 시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란 경비병들이 사제들의 사주를 받아 퍼뜨렸다는,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는 소문을 그들마저도 믿었던 모양이다. 마태복음은 이 소문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굳이 적어 부활 같은 대사건에도 여론의 물타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뷔르낭은 그림을 그릴 때 종교적 상징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면 지평선 쪽에 노란빛이 남아 있는데, 이는 성경에 나오는바 이 사건의 시간적 배경이 동틀 무렵이기 때문이다. 요한과 베드로의 얼굴을 보면, 왼쪽 약간 높은 곳에서 비추는 빛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예수의 무덤은 제자들의 거처에서 동쪽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가는 거기로 향하는 들판의 북쪽에 서서 두 제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부활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 예수의 무덤은 동서남북 어디에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부활이란 새로운 빛을 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연수 소설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둠만을 볼 뿐이다. 그게 바로 인간의 슬픔과 고통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이 세계를 다르게 보려면 빛이 필요하다. 슬픔에 잠긴 마리아 막달레나와 절망에 빠진 두 제자가 처음에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건, 그래서 당연하다. 그 상황에서 예수를 알아본다는 건 빛을 알아본다는 뜻이고,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온 동네 꽃들이 모두 피어나던, 내 고향의 부활 풍경이 그런 새로운 빛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고 짐작만 할 뿐.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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