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29 20:26
수정 : 2015.03.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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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한국 냉면’이라고 팔리는 ‘연길냉면’. 간장 때문에 육수는 짙고 면은 고무줄처럼 질기다. 안현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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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진짜 쇠고기 육수가 패착이었어
※안현민(40)씨는 중국 베이징의 한식 셰프다. 2009년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식을 새롭게 해석한 레스토랑 ‘원 팟 바이 쌈’을 열었다. 5회에 걸쳐 베이징에서 한국 요리사로 사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베이징에서 생활을 한 지도 이제 5년이 넘었다. 자신감 하나로 베이징의 대사관 밀집 지역인 싼리툰에 한식당을 오픈한 지 만 4년째이다. 여기서 살면서 얻은 것은 중국인 직원들에게 매일 잔소리해대면서 느는 중국어 실력과 코피 터지며 배운 베이징의 외식사업 흐름이라 자부한다.
4년 전에 식당 문을 열면서 베이징 한식당들의 천편일률적인 메뉴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한식을 선보이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문만 열면 성공할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수지를 맞출 수가 없었다. 2년쯤 지난 후에 현지의 파워블로거 친구들을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베이징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식은 내가 추구하는 한식과 매우 달랐다. 전주비빔밥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곰탕국물을 끓이고 고명을 포함해 15가지가 넘는 재료를 사용했다. 여러 종류의 나물들을 일일이 손질해서 직접 볶은 약고추장으로 버무렸다. 하지만 “이게 무슨 비빔밥이냐”는 항의가 계속 들어왔다. 맛이나 만듦새가 문제가 아니었다. 돌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베이징의 중국인들에게는 돌솥에 담아 나오지 않는 비빔밥은 비빔밥이 아니었다.
냉면도 그랬다. 소의 양과 양지와 차돌박이, 닭으로 육수를 만들고, 손으로 눌러 뽑을 수 있는 제면 기계를 사서 메밀 함량 80%의 면을 뽑아서 평양냉면을 완성했다. 손님들마다 불평이 쏟아졌다. “이게 무슨 냉면이냐!” 이유를 모른 채 난감해하고 있는데, 어느 날 중국인 주방 직원이 측은해 보였는지 자신의 비밀 조리법을 보여줬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냉면집에서 배운 거라고 했다. 고기는 전혀 들어가지 않고, 맹물에 쇠고기맛 조미료, 빙초산, 엠에스지(MSG), 설탕, 간장, 사이다 등을 넣어 육수를 만든 다음 거기에 양념장과 수박이 올라가는 냉면이었다.
실제로 중국 전역에서 ‘연길냉면’, ‘조선 냉면’ 등의 이름을 달고는 “이것이 한국 냉면”이라고 팔리는 곳도 많다. 먹어 보면 간장 때문에 육수는 너무 짙고 면은 고무줄처럼 질기다. 새콤하고 달콤한 정도가 지나친, 자극적인 냉면이다. 고기 국물이 안 들어가니 가격 또한 18위안(한화 3000원대) 정도. 비싸야 38위안(한화 6600원대)이다. 중국 친구들이 “나 냉면 좋아해” 하면 100% ‘연길냉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한국 음식이라 생각한다.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기자들을 모아 행사도 하고 중국 방송에 출연해 정통 한식을 알렸다. 하지만 한번 각인된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10여년 전 대부분의 한식당은 조선족 동포들이 운영했다.
중국에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된 뒤 한식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이나 우다오커우는 베이징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 베이징 사람들이 거기까지 찾아가 제대로 된 한식을 먹기란 쉽지 않다. 한국인들은 잘 가지 않는 조선족 동포들의 한식당으로 손님이 몰렸다. 왜곡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고 짐작해본다. 당연히 조선족들이 즐기는 입맛대로 메뉴가 결정된다. 조선족이 조리하고 운영하는 한식당이 10년 넘게 베이징 사람들의 입을 길들였고, 그게 정통 한식으로 굳어졌다. 최근에야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한국인 주방장을 고용한 한식당이나 한국에 오래 살다 온 조선족 동포들이 문을 연 곳들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대만식 단맛 소스로 버무린 고기음식과 참치김치찌개 맛이 나는 부대찌개가 ‘한식’이라고 팔린다. 대박을 치고 분점을 낸다. 넓게 보면 조선족 동포들의 음식이 한식의 영역을 넓히고 영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한국인이 먹는 음식이 배척당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아쉬울 뿐이다.
안현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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