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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2 20:40 수정 : 2015.03.13 14:15

사진 안현민 제공

[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베이징에 식당을 열고 한 해가 지나서 중국 <선전티브이>의 ‘젠캉스창자’(建康食尙家)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다. 건강을 큰 테마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5월 말에 녹화해서 7월에 방송하는 거라 주제는 여름철 보양식. 한국인의 여름 보양식은 당연히 ‘삼계탕’이다. 삼계탕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당시 게스트 중에는 중국의 유명한 양생(養生) 전문가도 있었다. 진행자들은 인삼과 닭을 여름에 먹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삼계탕에는 황기가 들어가 기운을 북돋아 주고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좋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는 열이 피부 쪽에 모여 내부에 따뜻한 기운을 보충하고 고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 등을 얘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눈치였다. 양생 전문가는 인삼과 닭고기의 조화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중에서도 인삼에 가장 큰 의문점을 던졌다. 중국인들은 여름에 인삼을 잘 안 먹는다. 인삼은 열이 많은 성질이라서 여름에 먹으면 쉽게 ‘상훠’(上火)한다고 생각해서다. 상훠는 중의학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신체 내부에 열이 많아 대변이 건조해지거나 구강 혹은 비강, 점막 등에 염증이 생기는 증상을 말한다. 상초열(上焦熱)이라고도 하는데 상초는 중의학에서 말하는 횡격막 위의 기관으로 심장·폐 및 식도가 여기에 속한다. 매운 것도 상훠하기 쉬운 음식이라 생각한다. 중국 친구들에게서 매운 것 먹고 상훠해서 뾰루지가 생겼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중국에서 유명한 량차(凉茶: 냉차) 티브이 광고를 보면 매운 훠궈나 사천음식 먹는 식당에서 모델들이 외치는 장면이 있다. ‘上火, 那喝○○○凉茶’(상훠가 두려우세요, 그럼 ○○○량차)

문을 연 첫해 아무것도 모르고 복날이라고 삼계탕(사진) 행사를 위해 닭을 잔뜩 준비한 적이 있다. 단 두 그릇 팔렸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남은 닭고기를 직원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수십 마리 닭고기를 해치워야 했기에 목에서 닭 소리가 날 정도였다. 여름에 삼계탕이 안 팔린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지만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방송 출연하면서 눈치로 ‘중국인들이 삼계탕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국에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삼계탕을 전통식으로 하는 식당에서 먹고 왔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을 수없이 봤다. 결국 먹는 시기가 문제였던 것이다. 문 연 지 삼년째 되던 해 봄에 삼계탕 행사를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유명 음식 누리집에 ‘베이징에서 삼계탕 맛있는 집 1위’로 올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봄날 잔치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팔린 개수도 요란한 반응에 비해 적었다. 지난해 가을에 예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11월 삼계탕 프로모션을 했다. 봄이 아니라 10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그냥 메뉴판에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봄에 팔렸던 양의 3배가 팔렸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닭 육수를 끓여대기 바빴다. 주문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4년이 걸려 겨우 숙제를 하나 푼 셈이다. 사소한 건데 이런 차이가 있구나, 깨달았다.

몇 해 전 이맘때 노모가 다녀간 적이 있다. 아침에 어머니가 식당에서 냉수 한잔 마셨는데 그걸 본 중국 직원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란 표정을 지었다. 중국인들은 한여름에도 찬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더구나 연세가 많은 이가! 차가운 물을 마시면 몸이 상한다고 생각한다. 양생에 대해 관심이 많은 중국인들은 뜨거운 물이 몸을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의보감>에도 열탕은 ‘뜨겁게 끓인 물로 양기를 북돋우며 경락을 통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베이징에서는 여름에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더운 여름밤에도 미지근한 맥주를 마신다. 그러니 아무리 근사한 양꼬치가 안주로 나와도 술맛이 없기 마련이다. 지금도 음료나 맥주를 가져다주기 전에 중국인 손님에게 꼭 물어본다. “실온의 것으로 드릴까요? 차가운 것으로 드릴까요?”

중국 서안에 출장 와서 한국식으로 피로를 풀기 위해 맥주 한 캔 사려고 편의점에 갔더랬다. 냉장고가 꺼져 있는 게 아닌가! 맥주가 있는 냉장고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탄산음료가 들어 있는 냉장고도 마찬가지였다. 탄산음료와 맥주가 다 미지근한 상태다. 냉장고는 그냥 선반이다. 몇 년을 살아도 적응이 안 되는 이 상황을 여전히 만난다.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의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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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안현민셰프의 ‘베이징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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