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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4 20:29 수정 : 2015.03.13 14:15

사진 안현민 제공

[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베이징에서 외자기업으로 식당을 운영하다 보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은 세금이다. 매달 월 매출을 신고하고 일정 세금을 내야 공식 영수증인 ‘파피아오’를 가져올 수 있다. 세무국에 가면 공무원이 뭐라고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 방면의 구세주는 아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인데다 중국어가 모국어인 중국인이다.

세금뿐만 아니라 직원들과의 문화적인 충돌이 생기거나 하면 아내가 나서서 잘 조율해준다. 든든한 후원자를 둔 셈이다. 아내와의 나이 차이는 13살이다. 도둑놈 소리 들으며 결혼했다. 다른 다문화가정도 그렇지만 매일매일 문화적 차이를 절실히 느낀다. 며느리와 최소한 말이라도 통해야 된다고 결혼을 반대하시던 어머니라도 오시는 날이면 살얼음판을 걷는다. 고부갈등은 꼭 한국만 있는 것 같지 않다. 주변의 중국 친구들을 봐도 그렇고 티브이를 봐도 그렇다. 중국에서도 고부갈등은 흔한 드라마 소재다. <포포 라이러>(시어머니 오셨다)라는 드라마도 있다.

결혼한 지 2년째인데, 고부간 갈등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화적 충돌이 잦은 편이다. 음식 또한 빠질 수 없다. 특히 아침식사가 그렇다. 어릴 때 아침상은 밥과 국이 필수였다. 빵은 먹고 나면 허전했다. 커서는 국이 없으면 버터와 계란프라이, 간장, 깨소금에 비벼서 밥을 먹었다.

결혼한 다음 아침식사가 중식으로 바뀌면서 고난의 길이 시작됐다. 베이징의 보통 아침식사(사진)는 흔히 ‘유탸오’라는 튀긴 빵에 중국식 두유, 포자만두나 교자만두 등이다. 이런 것들을 가끔 먹으라고 하면 별미 삼아 맛있게 먹겠지만 매일 먹으면 된장찌개 생각이 간절해지고 아침식사를 아예 건너뛰게 된다.

그나마 이런 음식들은 양반이다. 가장 버거운 아침메뉴는 속에 아무것도 없는 밀가루 빵과 같은 ‘만터우’가 나올 때다. 만터우에 ‘셴차이’(겨자과식물의 뿌리를 가늘게 썰어 절인 중국 장아찌)와 ‘더우푸루’(두부를 18도 정도에서 발효시킨 뒤 소금에 절여 중국 미주(米酒)에 넣어 2차 발효시킨 두부로 질감은 치즈와 같으나 발효 냄새가 강하다), ‘셴야단’(소금에 절인 오리 알로 노른자가 담백해 보통 죽 먹을 때나 만두 먹을 때 많이 곁들인다)을 곁들여 먹는데, 아내의 고향이 산둥이어서 추가로 대파와 첨면장이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 먹으려니 안 넘어간다. 더우푸루는 적응하기 어려운 발효취가 있다. 양식 주방장이어서 고약한 냄새의 치즈를 좋아하는데도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적응 안 되는 것은 만터우다. 처갓집에 장모님이 직접 만드신 옥수숫가루로 만든 만터우는 조금 부드럽긴 하지만 안 넘어가긴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는 내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남방 쪽 신부와 결혼한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 어린 아들이 아침에 닭발을 뜯고 있는 걸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요리사이면 직접 해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부부가 아침을 서로 다른 메뉴로 만들어 먹는 것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가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아내를 한식에 천천히 젖어들도록 만들었다. 한식당을 운영하니 비교적 빠르게 아내는 익숙해졌다. 그다음은 아침식사로 국에 적응하도록 했다. 성과가 있었다. 아내는 이제 아침에 국과 함께 밥을 먹으면 속이 편안하다고 한다. 요즘 하는 일은 미역국 등 국 끓이는 법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또 하나, 한국 문화는 아침식사는 반드시 아내들이 많이 만든다고 세뇌시키고 있다. 다행히 아내는 한국 노총각 결혼 못할 법한 것 구제해주었더니 요구하는 게 많다고 하면서도 잘 배운다. 누군가가 아내에게 “한국에는 아침식사는 아내만 하라는 문화가 없다”고 고자질하지만 않는다면 행복한 나의 편안한 아침식사는 깨지지 않을 것이다. 혹시 아는데 모른 척하는 걸까?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의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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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안현민셰프의 ‘베이징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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