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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11 20:40 수정 : 2015.03.13 14:16

훠궈. 사진 안현민 제공

[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13년 전쯤이다. 중식에 조예가 깊은 배화여대 신계숙 교수와 함께 중국 상하이로 ‘100가지가 넘는 중국 음식 기행’을 갈 기회가 왔다. 당시 경주에 있는 한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몰려오는 벚꽃시즌인 4월은 휴가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곳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고 윤정진 셰프를 처음 맛났다. 방송으로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우람한 덩치에 압도당한 나는 주뼛거리며 모깃소리로 인사만 겨우 했다.

한식도 양식의 테크닉과 결합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공을 양식으로 선택했지만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끓일 수 있다고 한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식당을 운영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터닝포인트(전환점)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 지인들은 모두 윤정진 셰프를 추천했다. “받아주십시오. 저는 한식을 외국에서 하는 것이 꿈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스승이 돼달라 청했다. 하지만 윤 셰프는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포기할 내가 아니다. 그 뒤에도 몇 번을 더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안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그가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너 더 해야 돼!” 그 당시에는 그 말뜻을 몰랐다. 기초가 약한데 거기에 다른 것을 올리면 무너진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결국 제자는 못 되었지만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경주 호텔 요리사 생활을 그만두고 서울의 한 호텔로 이직을 했다. 상경하면서부터 그와 나의 관계는 변화가 생겼다.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큰형님이신 고 전대진 형님의 “현민이 챙겨라”라는 말 한마디에 의형제까지 됐다.

윤정진 형님은 정말 많이 챙겨주셨다. 외국에서 일하다 잠깐 휴가라도 내서 국내에 들어오면 “이거 꼭 먹어 봐야 한다”면서 형님은 당신의 형편이 안 좋아도 전국을 데리고 다니면서 음식을 사주시고 가르쳐줬다.

중국에서 레스토랑 열기 위해 투자받겠다고 거의 1년 넘게 직업도 없이 중국을 왔다 갔다 하다 결국 지쳐버린 나에게 형님은 위로의 따끈한 밥을 사줬다. 그의 위로가 정말 포근해 막차를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막차를 놓치면 난감했다. 돈벌이도 없이 중국과 한국을 오가다 보니 일하면서 얼마 모아놓지도 못한 돈을 다 써버리고, 주머니와 통장을 다 털어도 버스비만 달랑 남아 있는 형편이었다. 집에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헤어졌다고 생각한 형님은 불쑥 나타나 만원짜리 몇 장을 주머니에 쿡 넣어 주었다. “차비 해서 가”라는 말에 “네, 형님. 감사합니다” 하고는 형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친형제보다 더 잘해주셨던 형님께 배운 음식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육개장이다. 곰탕육수와 소고기육수, 우족의 비법까지 가르쳐주셨다. 육개장을 형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하다 보니 육개장 한번 끓이려면 최소 이틀이 걸린다. 양지와 차돌을 섞어서 육수 만드는 데 하루, 소 지방과 고춧가루를 잘 볶아서 고추기름을 만들고 육수와 섞어준 뒤 데친 채소들을 하나씩 넣어서 마무리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의외로 이 육개장을 중국인들도 좋아한다. 나는 훠궈(사진)를 먹으면서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 훠궈의 본고장은 충칭이다. 이곳의 전통 훠궈는 고추, 제피, 정향 등의 수많은 향신료를 넣고 소기름에 잘 볶아서 끓여 주는데 매운맛의 성분이 지용성이다 보니 매운맛이 잘 우러나 맵기도 맵지만 육수가 구수할 수밖에 없다. 개인접시 위에 육수라도 떨어지면 기름기와 함께 금세 굳어 버린다.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겠지만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먹으니 큰 문제는 안 된다. 훠궈에 맛을 들이다 보니 한국에도 진출한 적 있는 ‘하이디라오’를 자주 갔었는데 이제는 더 맵고 구수한 전통 훠궈집을 선호한다.

중국인들은 육개장에서 훠궈의 잔향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육개장에서 훠궈 흔적을 본다. 그러다 보니 훠궈를 보면 형님 생각이 난다. 지난달 베이징티브이 ‘상차이’(上菜) 프로그램에 출연해 금상을 받았다. 해산물을 주제로 대결하는 프로그램인데 100명의 대중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형님! 다 형님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의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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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안현민셰프의 ‘베이징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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