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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10 22:03 수정 : 2015.06.11 11:29

[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요즘 들어 베이징 생활에서 가장 큰 재미는 사부님과 식사를 하면서 중국 음식을 배우는 일이다. 사부님은 나를 초대해 당신이 직접 만든 여러가지 음식을 맛보게 한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와라”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무림 고수들에게만 내공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요리사에게도 내공이 필요하다. 비록 한식을 조리하지만 나의 내공 일부분은 중국 음식 덕분에 생겼다. 처음 중국 음식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신 분은 배화여대의 신계숙 교수님이다. 신 교수님의 강의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분과 함께 한 두세번의 중국여행에서 더 배움을 얻었다. 그는 항상 작은 흰색 보드를 준비해서 음식 나올 때마다 보드에 음식 이름을 써 가며 가르쳐주셨다. 중국 톈진(천진)에 있는 쉐라톤호텔에서 근무할 때는 월급의 대부분을 중국 음식을 먹는 데 썼다. 하지만 막상 베이징에 와서는 중국 음식을 정식으로 배울 기회가 그다지 없었다. 중국 음식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이 별로 없다. 직업학교를 가거나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늘 아쉬웠다. 사부님이 이런 갈증을 채워주신다. 세는나이로 올해 예순인 사부님은 아직도 열정이 남달라 사부님과의 저녁 식사는 늘 날을 넘기기 일쑤다. 오후 6시에 시작해 새벽 1시까지 줄곧 음식 얘기만 나눈다. 20가지가 넘는 중국 음식이 차례로 나온다. 아주 조금만 맛을 봐도 배가 부를 정도의 음식들이다. 여기다 음식 이야기까지 보태지니, 이보다 쉽게 음식을 배울 기회가 또 있을까! 아주 쏙쏙 머리에 들어온다. 사부님의 제자들이 있는 중식당에 갈 때도 있는데 나에게는 모두 사형(師兄)들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 조리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협활극에 나오는 고수들의 무공 수련을 하는 것 같다.

‘후이좌젠’. 서태후가 특히 좋아했던 음식이다.
‘후이펑탕’은 최근 갔던 식당 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 1858년에 개업식, 결혼연회 등 개인 파티를 전문으로 하던 식당으로 문을 열었지만 1902년 장씨 성을 가진 산둥(산동)사람이 이 식당을 사서 산둥 음식점으로 바꾸었다. 당시 주인과 내시 리롄잉(李蓮英, 서태후를 모신 내시)의 양자는 돈독한 관계였다. 양자의 설득으로 리롄잉이 산해진미를 좋아하는 미식가였던 서태후에게 후이펑탕 음식을 진상할 기회를 제공했다. 후이펑탕 음식이 마음에 든 서태후는 문패를 직접 써주고 금으로 된 찬합을 하사해 자신이 원할 때마다 그 금 찬합에 음식을 담아 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 나라의 기운이 쇠하자 베이징에서 비교적 오래된 식당들이 문을 닫을 때도 후이펑탕만은 만석이었다. 서태후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명성이 큰 몫을 했다. 메이란팡 등 당시의 유명인들은 앞다퉈 단골이 됐다.

후이펑탕의 음식 중 ‘후이좌젠’을 서태후는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이 음식은 족발의 발끝 부분만 재료로 사용한다. 서너시간 푹 삶은 다음 발톱 부분의 뼈를 제거한 뒤 대파와 간장, 비밀의 소스를 넣어 다시 한두시간 뭉근히 졸여서 완성한다. 돼지 발끝이어서 살점은 거의 없다 보니 족발보다 훨씬 더 물컹거린다. 진한 간장 맛이 특징이고 조리과정의 마지막에 뿌린 듯한 파기름이 진한 향을 끌어낸다. 살점도 없는 부위를 뼈를 제거하고 한 접시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0마리 이상의 돼지가 족히 필요했을 것이다. 사치를 즐겼다는 서태후가 좋아했을 만한 음식이다.

후이펑탕에 간 날은 흥건하게 취했다. 후이좌젠과 잘 어울리는 이과두주를 마셨는데, 루주(끓인 돼지 내장에 속이 없는 만터우를 넣고 살짝 다시 끓인 음식)와는 더 잘 어울려 평소보다 더 마셨다. 루주는 20가지 넘는 음식을 맛보았음에도 사부님이 “정말 제대로 만들었다”고 해서 두 그릇씩이나 먹다 보니 속이 더부룩해졌다. 맛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독하게 먹었다. 음식 내공 쌓는 일은 정말 어렵다.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 오너셰프, 사진 안현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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