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01 20:30
수정 : 2015.07.02 10:15
[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중국 음식점에서 탕수육, 팔보채 등의 요리를 주문하면서 소주와 맥주는 왠지 안 맞는 것 같다. 고량주를 주문하기에는 한자로 가득 찬 녹색 병들의 암호가 도통 풀리지가 않는다.
드넓은 대륙 중국의 술이니 그 종류 또한 많아 중국의 백주(白酒)를 안다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병에 적혀 있는 암호들을 풀어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고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이것을 몸으로 느끼며 배우는 데에는 나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사실 백주는 예전에는 소주(燒酒) 혹은 고량주(高粱酒)라고 불렸으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백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곡물을 이용해 발효주를 빚고 이것을 증류한 것이 증류주인데 우리나라 전통 소주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한국 전통 소주가 쌀만 사용해서 술을 만드는 것 같지만 문배주 같은 경우는 쌀이 아닌 수수로 담근다. 그래서일까 중국 오량액(五粮液)이라는 백주는 첫 느낌에서 배향이 느껴지는데 문배주와 많이 닮았다.
백주는 브랜드를 따라 고르기도 하지만 향의 종류로 고르기도 한다. 향으로 백주를 분류하면 12가지 향의 종류로 구분이 되는데 베이징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장향형(醬香型), 농향형(濃香型), 청향형(淸香型), 겸향형(兼香型), 약향형(葯香型) 정도이다. 특향형(特香型)이나 미향형(米香型)은 쌀로 백주를 담갔을 때 생기는 특징이나 아직 접해 보지는 못했다. 또 참깨향의 술도 있다고 하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술은 아니라서 아직 맛보지 못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겸향형은 두 가지 향기가 겹쳐지는 백주이고 약향형은 약재를 넣어 약재향이 나는 백주이다. 일반적으로 장향형, 농향형, 청향형을 많이 접할 수 있다.
향기는 각 지역의 기후에 따른 누룩의 제조법이나 발효법, 저장법 등과 관계가 깊은데 중국 백주 하면 떠오르는 마오타이(矛台)는 장향형이다.
누룩을 높은 온도에서 1년에 한번 띄우고 발효시킬 때는 곡물과 누룩을 쌓아 올려 발효시키는 퇴적발효법으로 발효시킨다고 한다. 장향형의 특징은 술맛이 깔끔하고 향기가 풍부하면서 우아한 게 특징이다. 일반인에게는 참관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마오타이 술 공장 견학의 기회가 와서 3주 전 만사를 제치고 구이양까지 날아갔었다. 하지만 견학 하루 전 산사태가 나서 도로가 유실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런 것을 두고 배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하는 걸까! 농향형은 라오자오라고 하는 지하창고에서 발효를 시키는데 부드럽게 이어지는 향이 강하면서도 달콤하다. 유명한 수정방(水井坊)과 오량액(五粮液)이 여기에 속하는데 주로 쓰촨 지역에 있다. 청향형의 경우 향이 맑고 가벼운 편이라 한국인들도 쉽게 즐기는 편이다. 누룩 띄울 때가 비교적 선선하다 보니 향이 맑지 않나 생각해 본다. 대표적인 술이 이과두주(二鍋頭酒)로 베이징을 대표하는 백주이다. 이과두주는 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680년 청나라 강희제 때 조씨 3형제에 의해서 지금의 이과두라 불리는 기술이 확립되었다. 냉각시키는 기술이다. 이과두는 냉수를 넣어 냉각시키는 솥을 3개 사용한다. 첫번째 냉각 솥에서 추출하는 ‘주두’(酒頭)와 세번째로 냉각 솥에서 추출하는 ‘주미’(酒尾)의 알코올은 비등점이 낮거나 다양한 물질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두번째 냉각 솥의 냉수로 냉각한 뒤 추출한 술만을 취한다고 하여 ‘이과두’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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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신제품(왼쪽)과 가격이 저렴한 제품. 사진 안현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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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과두주 하면 홍성(紅星)이라는 오래된 브랜드가 인기였으나 순신농업이라는 베이징의 순이구에 기반을 둔 농업 관련 회사에서 2000년대 뉴란산바이주(牛欄山白酒)라는 브랜드를 생산하면서 시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베이징의 젊은 세대에 맞게 향과 맛을 맞춰 놓아 베이징에 있는 많은 중식당에서 뉴란산바이주를 많이 판매한다. 내 취향에는 뉴란산바이주는 향이 강하게 느껴져서 좀더 부드럽게 느껴지는 홍성을 선호하는 편이다. 최근 들어 이과두주 제조회사에서 농향형 이과두주를 내놓기도 했는데 농향형 이과두주는 베이징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쓰촨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이과두주 하면 청향형이라는 법칙이 깨어진 것이다. 이과두주가 청향형이라고 해서 샀더니 농향형이어서 입에 안 맞아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자를 잘 보고 골라야 한다.
중국에서는 아무리 좋은 술 브랜드라고 해도 원주(原酒)에 주정(알코올 원액)을 섞는 각종 방식들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은 원주의 함량과 원주의 숙성 기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작은 녹색 병의 백주들은 주정 함량이 엄청 높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의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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