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29 19:06
수정 : 2015.07.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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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첫날 제작진이 주방 안에서의 ‘버럭질’을 원해서 몇 번 소리 질러 주고 서너 시간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촬영했다. 사진 안현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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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한국은 ‘쿡방’(요리법 알려주는 방송) 열풍으로 셰프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6월께 한국을 방문했는데, 요리사가 아닌 친구들조차 셰프 전성시대를 얘기할 정도였다. 셰프의 한사람으로서 달라진 위상이 반갑기만 했다.
중국은 아직 ‘쿡방’보다는 식당 소개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이 높다. 이제 조금씩 ‘먹방’으로 넘어가는 중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욕설로나 들릴 ‘츠훠’(吃貨: 식충이, 밥벌레 같은 뜻이나 지금은 ‘좀 먹을 좀 안다’는 의미로 쓰인다)를 자청하는 중국인이 많아졌다. 주변의 친구들이 너도 셰프니깐 방송 출연 안 하냐고 묻는데, 한국에서는 방송 출연한 적이 없다. 한국의 한 방송사 음식프로그램에 자문위원으로 겨우 이름을 올린 적은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1년에 몇 번씩 중국 티브이(TV)에 출연한다.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이나 한국 식재료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자주 찾아온다. 한식으로 요리 대결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도 있다. 방송 촬영을 같이 한 피디(PD)들은 다른 방송사로 옮기더라도 나를 잊지 않았다. 사실 처음 요리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왔을 때만 해도 능숙하지 않은 중국어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중국어 발음에서 한국어 억양이 너무 많이 난다”며 촬영 도중에 하차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꾸준히 방송 출연에 매달린 이유는 오로지 한식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였다. 제작진이 정리한 한식 자료들은 틀린 내용이 많다. 중국의 검색포털 ‘바이두’(百度)의 한식 관련 내용들은 부정확하다. 한식이 중국에서 뜨내기 장사치처럼 단순한 흥밋거리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알려지는 것이 싫다. 일단 출연하면 몸치, 음치지만 과한 춤과 노래 요구에도 응한다. 실제 이런 노력들은 시청률에 반영된다. 관광전문 채널 <여유위성>(旅游衛星)의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해 선보인 비빔밥은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을 올렸다. <시시티브이(CCTV)2>의 요리대결 프로그램에서도 주가를 올렸다. 마늘을 씻지 않고 다지는 팀원들을 향해 던진 세 번의 ‘버럭질’은 시청률을 올렸다. 제작팀은 두둑한 보너스를 주면서 한 번 더 출연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하루 동안 식당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출연을 미뤄 놓은 상태다.
얼마 전에는 요리와는 상관없는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왔다. <와이궈런짜이중궈>(外國人在中國)라는 프로그램인데 한국으로 말하자면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이다. ‘인지도도 없는 나한테 이런 기회가 오다니!’라는 생각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연을 결심했다. 촬영 첫날 제작진이 주방 안에서의 ‘버럭질’을 원해서 몇 번 소리 질러 주고 서너 시간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촬영했다. 다음날은 사부에게 중국 음식을 배우는 것을 찍었다. 그날 촬영한 음식은 ‘궁보계정’이었다. 어느 중식당에 가도 있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사부에게는 특별하다. 궁보계정 국가지정 전수자였던 사부의 스승이 지난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장제스 등 근대 중국의 유명 정치인들이 그분의 궁보계정을 즐겼다고 한다.
사부의 궁보계정은 흔히 보는 달고 신 맛 위주가 아니다. 맛과 색깔이 사뭇 다르다. 간장 맛과 흑초의 맛이 적절히 배합되어 가볍지 않고 색깔도 간장 빛이 약간 도는 갈색에 가깝다. 식어도 맛있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실수를 하라고 해서 제대로 된 맛을 못 낸 점이 괴로웠다. 촬영 사흘째 되는 날은 베이징 오리 구이를 촬영했다. 한국인 셰프라서 김치 만드는 것, 베이징 음식 먹기 등도 촬영했다. 속으로 ‘언제 끝나나’ 하면서 했지만 촬영이 끝나고 나니 아쉬웠다. 엿새 동안 동고동락했던 촬영팀과 헤어지는 것도 싫었다. 한식 덕분에 중국에 와서 ‘연예인 코스프레(?)’까지 하게 되다니! 한식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자랑스러웠다.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의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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