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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11 20:34 수정 : 2015.11.12 10:17

고기구이 집 ‘카오러우지’. 사진 안현민 제공

[매거진 esc] 안현민 셰프의 베이징 밥상

‘홍콩의 식신’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영화제작자 겸 음식평론가 차이란 선생을 베이징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모 잡지 행사장에서 만난 그분은 처음 나를 소개받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한국음식 너무 좋아한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한식을 먹는다”며 한식 마니아임을 자랑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와 식사를 한 장소는 ‘카오러우지’. 고기구이 집이다. ‘카오러우완’도 비슷한 고기구이 집으로 1686년에 문을 열었다. ‘지’와 ‘완’은 주인장의 성이다. 이 둘은 재료가 고기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판이하다. 카오러우완은 소고기구이 집이고, 1848년에 문을 연 카오러우지는 양고기구이 집이다.

카오러우완이 훨씬 더 오래되어 명성은 더 높지만, 카오러우지는 2층에 고즈넉한 청나라 때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방이 있어 인기가 많다. 카오러우지가 있는 허우하이(后海) 지역은 서울의 북촌처럼 오래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베이징에서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방이 하나밖에 없다 보니 방 예약을 할 때는 최소 1000위안(한화 18만원) 이상 매출을 올린다는 언질을 줘야 한다. 10명 이상이 둘러앉아서 먹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 위에 아궁이처럼 생긴 화로가 있다. 그 화로에 숯을 넣어 불을 피우고 그 위에 큰 철판이 올라간다. 원탁 주위로 세 개의 긴 의자가 있는데 이것은 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서 먹을 때 다리를 하나 걸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늦여름에는 땀을 훔쳐 가면서 먹으라고 수건도 한 장씩 나눠준다.

두꺼운 철판 위에 올려 구워 먹는 고기는 한국의 불고기를 연상하게 한다. 이름도 카오러우(구운 고기)다. 말 그대로 구워 먹는 고기인데, 한국과 비슷하게 간장으로 절여 굽는 것이 특징이다. 큰 칼로 고깃덩어리를 일정한 두께로 써는데, 큰 칼과 대조적으로 매우 얇아서 대단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얇게 썬 고기를 간장, 다진 마늘, 생강, 새우젓 등에 재는데, 한국 불고기에 비해 단맛이 적을 뿐이지 불고기와 매우 흡사하다. 불판 위에서 볶듯이 굽는 것도 비슷하다. 볶을 때 대파와 고수를 곁들이는 점이 다르다. 긴 대나무 젓가락으로 큰 불판 위의 고기를 뒤적이며 구워줘야 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한껏 고기를 힘겹게(?) 구워 먹고 나자 종업원은 거위 알을 깨뜨려 밥에 얹어주었다. 흰자는 익히고 노른자는 익히지 않는다. 익지 않은 노른자는 익은 고기와 만나 마치 일본의 ‘스키야키’ 같은 맛을 낸다.

카오러우완은,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야 하는 카오러우지와 달리, 조리사가 커다란 불판 위에서 고기를 구워준다.

카오러우지와 카오러우완에서 내놓는 카오러우는 ‘솬양러우’라고 하는, 동으로 만든 신선로 그릇에 먹는 샤브샤브와 함께 청나라 초기 때 음식이다. 철이나 동으로 만든 냄비나 조리 기구들이 청나라 초기 들어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고기를 구워 먹거나 삶아 먹는 방식은 원나라 때 몽골인으로부터 전해서 크게 전파되었다. 몽골인에 의해 전해진 음식들을 대부분 지금 베이징의 무슬림 음식점에서 판매한다. 때로 베이징 전통음식들조차 무슬림 음식점에 더 많은 경우가 있다. 심지어 베이징덕도 무슬림 방식이 있다. 무슬림 방식은 오리를 절이는 과정에서 산초물을 사용한다. 카오러우지와 카오러우완을 보면 부럽다. 한국의 경우 오래된 유명 식당들이 자신들의 디엔에이(DNA)를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 200~300년 전 선조들이 즐기던 음식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남아 있다는 게 매우 부럽다.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의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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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안현민셰프의 ‘베이징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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